[11월20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축구황제 펠레 ]

 

 

 

 

▶ 2011년   나리타 前 한일축제한마당 실행위원장 별세

 

▶ 2009년   사이판, 관광지에서 총기난사 사건 발생

 

▶ 2008년   4조(兆)...사상 최대 '조희팔 다단계 사기' 적발

 

▶ 2002년   북한경비정, NLL(북방한계선) 침범

 

▶ 2001년   덴마크 총선, 70년 만에 우파승리

 

▶ 2000년   인천국제공항을 잇는 영종대교 개통

 

▶ 1998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 방한, 김대중 대통령과 대북정책 집중 논의

 

▶ 1997년   북한 일본인 처 고향방문

 

▶ 1994년   남산 외인아파트 철거

 

▶ 1994년   앙골라 19년 간의 내전 종식

 

▶ 1992년   태평양 해저케이블(TPC4) 개통

 

▶ 1992년   한국-우즈베키스탄, 무역협정-투자보장협정-과학기술협력협정 체결

 

▶ 1991년   우편물 차량배달제 시행

 

▶ 1991년   마케도니아 독립

 

▶ 1985년   MS윈도우 1.01리테일 버전 출시

 

▶ 1983년   미 ABC-TV, 핵공포 가상영화 `그날 이후` 방영

 

▶ 1982년   박상은 살해용의자 정재파, 대법원서 무죄선고

 

▶ 1980년   정부, 공직자 재산등록제 및 사기앙양 종합대책 발표

 

▶ 1975년   프랑코 스페인 총통 사망

 

▶ 1975년   대구 서문시장에 화재. 천팔백여 점포 전소

 

▶ 1970년   유엔총회, 중국대표권 문제 중요사항으로 채택

 

▶ 1969년   펠레 909경기 만에 1,000골 달성

 

▶ 1967년   여야전권회담 성공, 합의의정서 발표

 

▶ 1966년   충남선 (논산-부여 간 24km) 기공

 

▶ 1963년   유엔총회, 인종차별철폐 선언을 채택

 

▶ 1962년   미국 케네디 쿠바 해상봉쇄 해제 선언

 

▶ 1961년   케네디-아데나워 서독수상 회담

 

▶ 1959년   서구7개국 자유무역연합(EFTA) 결성 가조인

 

▶ 1958년   농업협동조합 중앙회 발족

 

▶ 1954년   미 8군사령부 일본으로 이동

 

▶ 1952년   이탈리아 철학자 베네데토 크로체 사망

 

▶ 1948년   국가보안법 통과

 

▶ 1947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결혼

 

▶ 1945년   뉘른베르크 전범재판 개정

 

▶ 1942년   일본, 조선징병제도실험요강 결정

 

▶ 1922년   연합국-터키 간의 제1차 로잔회의 개최

 

▶ 1918년   미주교포단체, 미대통령 윌슨에게 독립요망진정서 제출

 

▶ 1910년   톨스토이 사망

 

▶ 1905년   장지연,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 게제

 

▶ 1897년   독립문 준공

 

▶ 1894년   러시아의 작곡가 루빈스타인 사망

 

▶ 1889년   천문학자 에드윈 허블 출생

 

▶ 1878년   아프가니스탄과 영국의 제2차 아프간전쟁 시작

 

▶ 1873년   프랑스군, 하노이 점령

 

▶ 1815년   영국·오스트리아·프로이센·러시아가 4국동맹 맺음

 

▶ 1737년   영국 왕비 캐롤라인 사망

 

▶ 1602년   독일의 물리학자 오토 폰 게리케 출생

 

 

 

[ 사진2. 축구황제 펠레 오버헤드킥 ]

 

 

 

축구황제 펠레(Pele, 본명: Edison Arantes do Nascimento 당시 29세)가 브라질 북쪽

살바도르에서 열린 경기서 909경기 만인 1969년 11월 20일 마침내 1,000골을 달성했다.

며칠 전 말라카낭 경기장에서는 1,000골을 기대했던 17만명이 경기를 구경했으나 펠레는

무득점에 그쳐 팬들의 기대를 저버린 바 있다. 말라카낭 경기장에는 이 역사적인 장면을

구경하기 위해 외신기자들이 엄청나게 몰려들었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모여든 기자들이

무려 1,500명을 넘었다고 한다.

 

 

 

 [ 사진3. 축구황제 펠레 드리블 ]

 

 

 

이날 경기는 펠레가 소속된 브라질의 산토스와 아르헨티나의 바스코다가마의 경기로

바스코다가마의 골키퍼 로베르토 아드라다는 전반전에 펠레의 슛 5개를 잘 막았으나,

후반전 22분 펠레는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909경기 1,000골는 대기록을 작성하였다.

당시까지 1,000골이상 보유자는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빈더(Franz Binder)와 브라질의

아르투르 프리댄라이히(Art(h)ur Friedenreich)펠레는 역사상 세번째 1000골 보유자가

되었다. 펠레의 통산 1000골 기록달성을 축하하며 기록달성 다음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우정당국은 우표2백만장을 발행했으며, 브라질정부는 이날을 공휴일로 선포하였다.

 

 

 

[ 사진4. 1970년 멕시코 월드컵 축구황제 펠레의 마지막 월드컵 ] 

 

 

 

펠레는 은퇴할 때까지 선수시절을 통해 총1,364게임에 출전해 무려 1,281골을 성공시켰다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 2011년 1월 20일 발표기준 통산 560경기 618골). 1974년

은퇴후 미국에 축구 붐을 일으키겠다고 코스모스에 입단, 마지막 투혼을 불사르고 1981년

재은퇴한 펠레였다. 1998년 초 카르도스 대통령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감투가 거북하다고

체육부 장관직을 던져버리고 축구해설가로 마이크를 잡은 펠레, 그는 영원한 자유인이었다.

 

 

 

[ 사진5. 축구황제 펠레 (현재 모습)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9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왼쪽-이순신 장군 영정 , 오른쪽-이순신 장군 동상 ]

 

 

 

 

▶ 2009년   첫 EU 대통령 선출

 

▶ 2009년   패션모델 김다울 프랑스 자택에서 사망

 

▶ 2008년   행남자기 김준형 창업주 별세

 

▶ 2004년   광주, 수능 '휴대전화 부정' 사건

 

▶ 2002년   7만7000여t 중유 실은 유조선 스페인해안 침몰. 해양오염 심각

 

▶ 1999년   중국, 러-미에 이어 세 번쩨로 무인우주선 발사

 

▶ 1995년   크바스니에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에 당선

 

▶ 1987년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 사망

 

▶ 1984년   중단되었던 남북적십자회담 예비접촉 열려

 

▶ 1984년   멕시코시티 가스공장서 대규모 폭발사고 544명 사망. 주민35만명 대피

 

▶ 1982년   미국, 퍼싱II 미사일 발사 성공

 

▶ 1981년   여-야, 야간통금해제를 정부에 건의

 

▶ 1980년   KAL기 김포공항서 착륙중 화재 15명 사망, 15명 부상

 

▶ 1979년   계엄 당국의 휴교 조처 해제로 대학교 전면 개교

 

▶ 1979년   이란, 미국 인질중 여자등 13명 석방

 

▶ 1978년   북경에 모택동비판 대자보 등장

 

▶ 1977년   인도에 해일 발생. 2만여명 실종

 

▶ 1977년   이집트 사다트 대통령, 이스라엘 방문

 

▶ 1975년   유엔총회, 한국문제의 서방-공산측 두 결의안 동시채택

 

▶ 1975년   한-이란 각료공동회의. 한국의 대(對)이란 기술자 파견, 건설참여 등 10개항 조인

 

▶ 1968년   한국-스와질란드 국교 수립

 

▶ 1965년   바티칸 공의회, 신앙의 자유 선언안을 승인

 

▶ 1963년   몬트리올서 캐나다여객기 추락 117명 사망

 

▶ 1961년   네루-나세르-티토, 나세르에서 중립국 수뇌회의

 

▶ 1960년   북한, 남북연방제 제안

 

▶ 1957년   유엔총회, 군축위 확대안을 채택(25개국 구성)

 

▶ 1946년   대일(對日) 우편물 정식인가

 

▶ 1946년   유네스코, 파리에서 제1차 총회

 

▶ 1942년   소련군, 스탈린그라드서 독일군에 대반격 개시

 

▶ 1942년   대종교 주요간부 21명 구속

 

▶ 1924년   신사상연구회 화요회로 개칭

 

▶ 1917년   인도수상 인디라 간디 출생

 

▶ 1863년   링컨, 게티즈버그 연설(Gettysburg Address)

 

▶ 1828년   슈베르트 사망

 

▶ 1600년   영국 왕 찰스1세 출생

 

▶ 1598년   이순신 장군 노량해전에서 전사

 

 

 

 [ 사진2. 노량해전 ]

 

 

 

노량해전

 

          조선 선조 31년(1598년)에 노량 앞바다에서 이순신장군이 왜병과 대결한 마지막 해전,

         이 해전에서 이순신장군은 명나라 장군 진린과 더불어 싸웠으며, 승리와 함께 전사함.

 

7년간 조선을 황폐화시킨 임진왜란(1592년~1598)에 정점을 찍은 결정적인 해전.

오늘날 경상남도 남해군 노량리와 하동군 노량리 사이의 좁은 물길이 거센 해협의 주도권을

놓고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전선 83척과 명나라 전선 63척이 일본의 500여 전선과 격

렬한 전투를 벌였다. 당시 조선에 주둔하던 왜군은 명나라의 참전과 조선군의 활약으로 패

을 거듭하며 기세가 꺾인 상황이였다. 결정적으로 일본 통일 이후 15만 대군을 이끌고 한반

도를 침략하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했다는 사이 왜군 수뇌부 사이에 전파되면서 조선

정벌론은 갈수록 힘을 잃어갔다. 왜군은 퇴각을 모색했다.

 

 

 

 [ 사진3. 노량해전 ]

 

 

 

이때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은 명나라군과 함께 노량 앞바다에서 왜군의 퇴로를 막기로 결

정했다. 양민들을 무참히 학살, 약탈한 왜군이 또 언제 조선 땅을 노릴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한명도 살려보낼 수는 없었다. 조선군은 순천왜성에 주둔해 있던 왜란의 선봉장 중 하나인

고니시 유키나가의 부대와 순천 왜교에서 전투를 벌여 큰전과를 올렸고, 궁지에 몰린 고니시는

사천과 고성에 주둔 중이던 왜군에 도움을 요청했다. 12월15일, 일본 수군 6만여명과 500여척

함선이 남은 군을 모아 퇴각하기 위해 노량으로 집결했다.

 

 

 

 [ 사진4. 노량해전 ]

 

 

 

이튿날 새벽 4시, 이들의 진입을 예견해 이순신이 미리 매복을 시켜놓은 조선의 함선들이 일본

함선을 향해 맹렬하게 포를 쏘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일본 함선 50여척이 격파됐고

200여명의 애군이 사망했다. 오전 8시, 아침 해가 노량 앞바다를 비췄을 때 일본군 전함은 이미

200척 이상이 완전히 파괴되고 150여척이 파손 된 상태였다. 일본 수군은 150여척의 남은 배

이끌고 서둘러 퇴각하기 시작했다.

 

 

 

 [ 사진5. 이순신 장군 장검 ]

 

 

 

조선과 명의 수군은 이들을 추격했으나, 이 과정에서 이순신은 관음포에서 일본군의 총탄에 맞아

쓰러지고 말았다. 살아남아 일본에 귀환한 배는 겨우 50여척으로 알려졌다. 사망한 이들은 대부분

일반 병사들이었고, 왜군 지휘부는 살아서 본국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전쟁 후 일본의 권력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임진왜란에 불참하며 도요토미를 견제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 막부를 열어

첫 쇼군(將軍)이 됐다. 전란 이후 조산과 관계개선을 꾀한 그는 화려하게 치장하됐던 도요토미의

분묘를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폭파함으로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에게 사루 책임을 물었다.

 

 

 

 [ 사진6. 이순신 장군 묘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8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사이비종교 교주 짐 존스 ]

 

 

▶ 2008년   판돈 1조원대 인터넷 도박조직 검거

 

▶ 2004년   1300만년전 유인원 화석 일명 인류진화의 ‘잃어버린 고리(missing link)’ 스페인서 발굴

 

▶ 2004년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 고향 아칸소주 리틀록에 ‘대통령 도서관’ 개관

 

▶ 2002년   한국기자협회 주최 제1회 재외동포기자대회 개막

 

▶ 1998년   금강산관광 1호선 '현대금강호' 첫 출항

 

▶ 1997년   우수 DB 대상 신설

 

▶ 1994년   한국-짐바브웨 국교 수립

 

▶ 1993년   駐호치민 한국총영사관 개설

 

▶ 1992년   유명우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다시 획득

 

▶ 1992년   한국-슬로베니아 국교 수립

 

▶ 1992년   한국-크로아티아 국교 수립

 

▶ 1991년   전 체코대통령 구스타프 후사크 사망

 

▶ 1988년   광주특위 청문회

 

▶ 1987년   전국우표전시회 개최

 

▶ 1987년   일본 소니사, 미국의 CBS레코드사 인수

 

▶ 1982년   권투선수 김득구 사망

 

▶ 1982년   한국형 해군경비함 첫 진수

 

▶ 1978년   남미 가이아나서 사이비종교단체 '인민사원(People´s Temple)' 집단자살, 914명 사망

 

▶ 1977년   전 외무장관 최덕신 미국에 망명

 

▶ 1976년   문양자, 종별사격대회서 스탠다드권총부문 세계신기록 수립

 

▶ 1974년   민족문학작가회의 전신 자유실천문인협의회 결성

 

▶ 1970년   서독, 폴란드 국교정상화 가조인

 

▶ 1967년   영국, 파운드화 평가절하. 세계적 통화위기 촉발

 

▶ 1961년   문교부, 사립대 정비 일환으로 전국 12개교 폐지

 

▶ 1961년   국가재건최고회의, `증수회 처벌에 관한 특례법` 제정

 

▶ 1958년   국가보안법 신안 국회에 제출-보안법파동의 시작

 

▶ 1957년   상용한자 1300자 채택

 

▶ 1957년   북한적십자사, 납북인사 337명의 명단 통고

 

▶ 1957년   캄보디아 영세중립국 선언

 

▶ 1955년   소련수뇌 일행, 인도 방문

 

▶ 1954년   한미상호방위조약 발효

 

▶ 1952년   작가 프루스트 사망

 

▶ 1952년   프랑스 시인 폴 엘뤼아르 작고

 

▶ 1952년   국어학자 일사 방종현 사망

 

▶ 1951년   여객선 남해호 진도앞바다서 침몰. 70명 사망

 

▶ 1943년   일본의 자연주의 소설가 도쿠다 슈세이 사망

 

▶ 1936년   독일-이탈리아, 스페인의 프랑코정권 승인

 

▶ 1934년   이탈리아의 추기경 가스파리 사망 - `교회법전`을 편찬

 

▶ 1928년   미키 마우스의 '증기선 윌리' 개봉

 

▶ 1903년   미국-파나마, 파나마운하 조약체결. 건설-운영-관리-보호에 대한 모든 권리를 획득

 

▶ 1901년   미국의 여론조사통계가 조지 갤럽 출생

 

▶ 1884년   우정총국, 우정업무 개시

 

▶ 1884년   국낸 최초 우표 발행

 

▶ 1626년   로마, 베드로 대성당 봉헌

 

 

 

[ 사진2. 사이비종교 교주 짐 존스 ]

 

 

 

남미 가이아나의 밀림에 본부를 둔 사이비 종교단체 '인민사원(People‘s Temple)' 

신도 9백14명이 교주 짐 존스(James Warren "Jim" Jones)의 "이제 우리는 딴 세상에서

 만날 순간이 왔다" 는 '영생' 선언과 함께 1978년 11월 18일 집단 자살 및 학살극을

 빚었다. 이 집단촌은 원래 사회개혁이라는 좋은 목적으로 미국 인디애나주에서 시작

되었으나 남미의 가이아나로 근거지를 옮기면서 점차 교주를 중심으로 개인화와 우상

 시작됐다. 존스는 신학을 공부하면서도 칼 마르크스와 히틀러, 스탈린 등에 심취

고, "세상이 핵 전쟁으로 멸망할 것" 이라며 자신이 구세주임을 자처하며 가이아나에

존스타운을 건설했다. 미 정부는 교주가 1천5백만달러나 소유하고 있고, 인민사원이 

신앙을 빙자해 신도들에게 잔학행위를 자행하고 있다는 정보에 따라 레오 라이언(Ryan) 

연방 하원의원을 장으로 한 조사단을 이곳에 파견했다. 

 

 

 

[ 사진3. 사이비종교 단체 집단자살 ]

 

 

 

조사차 파견된 라이언 하원의원과 NBC방송 기자 등 5명은 총에 맞아 숨졌다. 미 정부의 

추궁이 두렵고, 또 한편으론 자신이 암에 걸려 죽어가고 있다고 믿었던 짐 존즈는 신도들

과 함께 자살을 결심했다. 쿨 에이드(Kool-Aid) 오렌지 주스에 독약을 탄 다음, 신도들에게 

마시게 했고, 어린이들과 개들한테는 주사로 독약을 주입했다. 이들의 자살은 단순한 자살이 

아닌 무장한 경들에 의해 강요된 살인이라 볼 수 있다. 이 순간에도 스피커에서는 교주의 

연설이 흘러나왔는데, 이것은 자살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세상에 대항하는 개혁혁명이라는

 내용이었다. 인민사원 사건은 사이비종교단체의 폐해라는 측면과 함께 미국사회 자체의 누적

된 병폐가 이들을 현실도피 집단거주 방식에 의한 가족개념의 확대 및 절대적 존재에 대한 

광신적 의존증 등을 유발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사진4. 사이비종교 단체 집단자살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7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지리산 반달가슴곰 ]

 

 

 

 

▶ 2007년   방글라데시에서 사이클론으로 11000여 명이 숨지는 등의 피해 발생  

 

▶ 2002년   내리교회 한국 감리교 미주선교 100주년 기념선교대회

 

▶ 2002년   조중훈 한진 회장 별세

 

▶ 2002년   반달가슴곰, 지리산에서 무인카메라에 잡힘, 20년 만에 첫 공식확인

 

▶ 2000년   부시, 제43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 2000년   국제 인터넷주소 관리기구(ICANN) 최상위 도메인 7개 추가

 

▶ 2000년   유엔군사령부-북한, 경의선 철도와 군사분계선 발생하는 군사문제는 남북 당사자가 처리하기로 합의

 

▶ 1998년   한국-홍콩, 형사사법공조협정 체결

 

▶ 1997년   대북수해복구장비 북송

 

▶ 1994년   한국-베네수엘라, 문화협정 체결

 

▶ 1994년   테니스선수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은퇴

 

▶ 1992년   새한국당 창당(대표 이종찬 의원)

 

▶ 1989년   제1회 이중섭 미술상에 화가 황용엽씨 선정

 

▶ 1983년   버마, 북한 아웅산테러범 대역죄로 기소

 

▶ 1980년   이스라엘, 중국과 비밀 군장비 판매협정 체결 발표

 

▶ 1980년   KBS, 공영체제로 기구개편 발표

 

▶ 1980년   작곡가 이흥렬 사망

 

▶ 1980년   중국 공산당, 공자 복권 발표

 

▶ 1979년   시인 주요한 사망

 

▶ 1978년   소련, 중성자탄 시험 성공 발표

 

▶ 1972년   페론 前아르헨티나 대통령, 망명 17년 만에 환국

 

▶ 1971년   태국 타놈수상 친위 쿠데타

 

▶ 1971년   국제노동기구(ILO), 자유중국 축출하고 중공 가입 가결

 

▶ 1969년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 협상시작

 

▶ 1967년   유엔총회, 통한(統韓)결의안 가결

 

▶ 1965년   유엔총회, 중공가입안을 찬반동수(47:47)로 부결

 

▶ 1955년   군당국, 평화선 침범 일본어선에 대한 발포방침을 발표

 

▶ 1952년   유엔총회, 남아공화국 인종차별정책 비난 결의안 채택

 

▶ 1942년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지 출생

 

▶ 1933년   미국, 소련연방 승인

 

▶ 1932년   독립운동가 이회영 순국

 

▶ 1917년   조각가 로댕 사망

 

▶ 1905년   을사조약 강제 체결

 

▶ 1902년   의학교장 지석영, 황성신문에 양매창론(楊梅瘡論)을 발표

 

▶ 1887년   2차대전의 영웅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 출생

 

▶ 1869년   수에즈운하 개통

 

▶ 1717년   프랑스의 계몽주의자 장르롱 달랑베르 출생

 

▶ 1558년   잉글랜드 최초의 여왕 메리1세 사망

 

▶ 1448년   세종대왕, 동국정운 반포

 

▶   888년   신라, 낭혜화상(朗慧和尙) 무염(無染) 사망 

 

 

 

 

[ 사진2. 지리산 반달가슴곰 ]

 

 

 

2002년 11월17일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반달가슴곰이

정부에 의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이사장 정영식)은 열 감지 센서가 부착된 무인카메라를 이용해

지리산에 서식하고 있는 야생 반달가슴곰을 촬영하는성공했

다고 밝혔다. 2000년 11월 한 방송사 카메라에 반달가슴곰 모

습이 담긴 적이 있지만 정부 산하 기관이 야생 반달가슴곰을

필름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공단측은 "2000년 11월 지리산

야생 반달가슴곰 서식이 보도된 이후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으며 10월초 촬영된 필름을 회수해 이달 초 현상한

결과 그 실체를 확인했다"고 말했다. 

 

 

 

 

[ 사진3. 지리산 반달가슴곰 ]

 

 


이번에 발견된 반달가슴곰은 무게가 100∼120㎏의 다 자란 곰으로,

물웅덩이로샘물을 먹으러 내려 왔다가 근처에 설치된 무인카메라에

 포착됐다. 5년간 야생 반달가슴곰을 추적해 온 한상훈 반달가슴곰

관리팀장은 "일본 전문가4명을 포함한 국내외 전문가들이 검증한

결과 야생 반달가슴곰인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마와 귀밑이 넓고 얼굴이 둥근 형태이며 목의 갈기가 사자처럼

옆을 향해 삐쳐 나와 있는데, 이는 대륙계 곰의 특징이다"고 설명했다.

한 팀장은 "이번에 촬영된 반달가슴곰은 머리 부위의 골격형태나

털이 난 상태로 판단할 때 6∼7세 이상의 성수(成獸)로 추정된다"면서

"그간 털이나 배설물, 나무상처 등 흔적조사를 실시한 결과 5마리

이상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사진4. 지리산 반달가슴곰 ]

 

 


앞서 강동원 공단 홍보비서실장은 "야생서식 행태 등을 파악하기 위해

촬영된장소를 중심으로 털과 배설물 등 각종 서식흔적을 조사.수집해

정밀조사를 실시하고있다"면서 "그간 각종 서식흔적을 종합해 볼 때

지리산국립공원에는 개체수는 적으나 반달가슴곰이 꾸준히 개체수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와 국립공원

관리공단은 출입통제 및 밀렵감시체제 확대를 통해안정된 반달가슴곰

서식지를 확보하고 종 복원사업을 통해 근친교배에 의한 자연도태를

예방해 지속적인 개체군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 사진5. 지리산 반달가슴곰 ]

 

 

 

우리나라와 러시아,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 서식하는 반달가슴곰은

 몸 전체에 검은색 또는 적갈색의 털이 나 있으며, 가슴에는 흰털이 V자

모양으로 나있다. 우리나라 반달가슴곰은 중형에 속하는 종으로,

네발로 서 있을 때 머리부터 꼬리까지 몸 길이는 약 152∼183㎝,

어깨 높이는 약 61∼83㎝ 정도이며, 지난 82년 11월 천연기념물

제329호로 지정됐다.

 

 

 

[ 사진6. 지리산 반달가슴곰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6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독일군에 내쫓겨 '게토'에 강제수용되고 있는 유태인 가족 ]

 

 

 

▶ 2010년   전통가곡.대목장.매사냥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 2009년   미셜 위, LPGA 프로데뷔 첫 우승

 

▶ 2008년   캘리포니아 곳곳서 큰 산불..LA 비상사태 선포

 

▶ 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흑인여성 최초 미국 국무장관에 선출

 

▶ 2000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 25년 만에 베트남 방문

 

▶ 1995년   노태우 전대통령 구속

 

▶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결성

 

▶ 1989년   제4차 남북체육회담, 남북단일팀 명칭 `코리아`로 결정

 

▶ 1988년   삼성전자, 세계2번째로 1MS램 개발

 

▶ 1988년   북한 연형묵 총리,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하는 남북정치군사회담 제의

 

▶ 1987년   낙동강하구둑 준공

 

▶ 1984년   동양 최장 대호방조제 준공

 

▶ 1983년   PLO반군, 아라파트 최후거점 점령

 

▶ 1983년   소련 `특무부대` 창설

 

▶ 1983년   소련, 미국기술 훔쳐 순항미사일 개발

 

▶ 1982년   국내 처음 근대2종경기(수상,육상) 개막. 우승 강석인

 

▶ 1982년   아시아경기연맹(AGF), AGF를 해체하고 새로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창설키로

 

▶ 1981년   연합통신, 제1회 전국신문-방송발행인 및 편집-보도국장회의 개최

 

▶ 1981년   미국-중공 공동경제협의회 개막(북경)

 

▶ 1977년   장성탄광 갱도에 화재, 46명 사상

 

▶ 1976년   세계 희귀조인 황새, 제주 성산포서 발견

 

▶ 1975년   스페인령 사하라를 모로코와 모리타니아가 분할키로 합의

 

▶ 1970년   파키스탄 태풍과 해일로 150만명 사망 

 

▶ 1965년   소련, 금성탐사를 위한 `금성3호` 발사

 

▶ 1962년   콜롬보계획 14차 자문위 한국가입 가결

 

▶ 1962년   프랑스 총선, 드골체제 확립

 

▶ 1960년   미국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사망

 

▶ 1959년   대구 국제백화점에서 화재 300여 점포 소실

 

▶ 1957년   64개국 공산당-노동당 회의. 모스크바에서 개최

 

▶ 1949년   외자구매청 신설

 

▶ 1945년   44개국의 교육문화회의에서 유네스코 헌장 채택

 

▶ 1945년   유네스코 창립총회

 

▶ 1940년   나치스, 바르샤바에 '게토' 설치

 

▶ 1938년   영국,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병합 승인

 

▶ 1933년   미-소 외교관계 수립

 

▶ 1919년   일본 낭인들, 항일중국학생들을 폭행(복주사건)

 

▶ 1918년   헝가리 공화제 선언

 

▶ 1908년   동양애국부인회, 부인병원 설립

 

▶ 1908년   보이스카우트 창설

 

▶ 1907년   오클라호마, 미합중국에 편입

 

▶ 1906년   토지-건물전당(典當)집행규칙 발표

 

▶ 1904년   제중원(세브란스병원) 낙성식

 

▶ 1900년   세계최초로 시민이 창설한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제1회 콘서트 개막

 

▶ 1899년   청-프랑스, 광주만 조차조약 조인

 

▶ 1831년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사망

 

▶ 1643년   상중 혼인 금지

 

▶ 1532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잉카제국 침략

 

▶ 1308년   동성동본의 결혼금지

 

 

 

 

[ 사진2.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거주지역 게토에 설치 된 담장 ]

 

[ 사진3. 폴란드 우치시 Zgierska거리 게토 육교 부근의 모습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40년 11월16일 폴란드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격리하기 위한 `게토'(Ghetto)가 1940년 11월 16일 바르샤바에 설치됐다.

게토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내의 한 구역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1179년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의 교류를 금지한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발단하여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교도를 강제로 분리이주 시키면서 형성되었다. 바르샤바에 설치된

게토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기 위해 수용소로 보내기 전 강제

이주시킨 유대인 집단촌이다. 원래는 프라하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학살

계획이 임박해오자 급히 바르샤바 시내에 설치했다.

 

 

 

[ 사진4. 폴란드 우치(Lodz)시 게토의 Zgierska 거리의 육교 ]

 

[ 사진5. 바르샤바 게토에 형성 된 시장 모습 ]

 

 

 

둘레에는 3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설치된 4㎢의 공간에 50만 명의

유대인들은 열악한 위생상태 하에서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식사량도

독일인 평균(2,400㎉)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쳐 결국 1942년 7월까지

기아와 질병 등으로 12만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나치에 의해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죽음의 도살장이었다면, 게토는 사실상 죽음으로

가는 대기실이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비명과 시체만이 난무했다.

 

 

 

[ 사진6. 게토 쓰레기더미 밑의 땅을 파서 먹을 것을 뒤지는 유태인여성과 이이들 ]

 

[ 사진7. 게토 쓰레기더미 밑의 땅을 파서 먹을 것을 뒤지는 유태인여성과 이이들 ]

 

 

 

게토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게 학살 수용소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1942년 7월 22일이었다. 그해 9월 12일까지 약 30만명의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대부분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히틀러는 "바르샤바의 게토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1943년 1월18일 두 번째

강제 이주가 시도되자 최초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비밀리에 무기를 확보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유대인들은 SS대원을 20명이나 살해했지만 그 댓가로

1,000여명의 유대인을 잃어야 했다.

 

 

 

 [ 사진8. 바르샤바 게토의 은신처 벙커에서 독일군에게 사로 잡힌 유태인들 ]

 

[ 사진9. 바르샤바의 게토에 숨어 독일군에 저항하다 붙잡혀 호송되는 유태인 봉기군 ]

 

 

 

1943년 4월 19일,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SS대원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권총, 수류탄, 화염병 등으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유대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 사이 죽어간 유대인은 1만 3,000명을 헤아렸다.

5월 16일 현장 지휘관인 슈트로프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체포되거나

학살된 유대인은 5만 6,065명. 바르샤바 게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녁 8시 15분에 모두 상황은 종료됐다."

 

 

 

 [ 사진10. 독일군의 포격에 폭파된 유태인 봉기군의 벙커 ]

 

[사진11. 독일군에게 사살 당한 바르샤바 유태인 봉기군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3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전태일 분신사건 ]

 

 

 

 

▶ 2010년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제

 

▶ 2009년   국민연금, 영국 HSBC 건물 구입

 

▶ 2008년   종부세 '세대별 합산부과' 위헌

 

▶ 2005년   제1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서 삼성 라이온즈 준우승(지바롯데 우승)

 

▶ 2004년   경복궁 경회루 40여년 만에 개방

 

▶ 2001년   '수지 김 사건', 남편의 자작극으로 밝혀져 파문

 

▶ 2001년   인기 탤런트 황수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 1998년   국제통화기금, 브라질에 415억달러의 구제금융지원을 승인

 

▶ 1997년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와 조순 민주당 총재, 통합당의 대통령후보를 이총재로, 당총재를 조총재로 공식발표

 

▶ 1995년   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 사임. `일본은 식민통치기간중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고 망언

 

▶ 1995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한국방문

 

▶ 1993년   파루크 레가리, 파키스탄 대통령으로 선출

 

▶ 1992년   육군사조직 `알자회` 파문

 

▶ 1985년   콜롬비아 루이스화산 폭발로 2만5000여명 사망

 

▶ 1984년   중국 산서성 당서기 선거, 중국사상 처음 비밀투표 실시

 

▶ 1982년   레이건, 대(對)소련금수조치 해제발표. 새 동서무역정책 선언

 

▶ 1981년   미국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 2차 발사

 

▶ 1980년   건설부, 동서고속도로(171.5km) 건설계획 확정

 

▶ 1980년   제15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대회 개최

 

▶ 1974년   아라파트 PLO의장 유엔총회서 첫 연설

 

▶ 1974년   유엔총회, 남아공화국 축출안 가결

 

▶ 1971년   미국 유인 화성위성 마리너9호 화성궤도 진입

 

▶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

 

▶ 1966년   일본, 밀월여객기 추락. 신혼부부 11쌍 등 51명 몰살

 

▶ 1962년   한국-독일 차관협정 조인

 

▶ 1961년   쿠알라룸프르에서 콜롬보계획 각료회의 개막

 

▶ 1960년   3.15부정선거로 기소된 장경근 전 내무장관이 입원중인 서울대병원에서 일본으로 탈주

 

▶ 1956년   미국, 공공버스 인종차별 위헌 판결

 

▶ 1946년   영등포역 구내서 열차충돌 41명 사망

 

▶ 1945년   군정청에 국방사령부 설치, 모병실시

 

▶ 1945년   남북한, 바터제 교역 채택

 

▶ 1940년   소형군용차 지프 개발

 

▶ 1933년   독일 총선거에서 나치스 대승

 

▶ 1921년   안창남, 한국 비행사 최초로 저공 비행에 성공

 

▶ 1921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태평양방면 영토권보장조약 조인

 

▶ 1918년   여준 등 중광단인사 39명 만주에서 독립선언서 발표

 

▶ 1918년   오스트리아 공화국 선포

 

▶ 1908년   나비연구가 석주명 출생

 

▶ 1907년   프랑스 자동차 제작자 폴 코르뉘, 헬리콥터를 설계, 최초 시험비행에 성공

 

▶ 1903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 사망

 

▶ 1893년   비타민 K의 연구로 유명한 미국 생화학자 에드워드 도이지 출생

 

▶ 1887년   주미공사 박정양 일행 향미(向美)

 

▶ 1868년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 사망

 

▶ 1851년   영국-프랑스간 최초의 통신케이블 설치

 

▶ 1850년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출생

 

▶ 1460년   포르투갈 항해왕자 엔리케 사망

 

▶   354년   기독교 사상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출생   

 

 

 

 

[ 사진2. 인간다움을 외치며 쓰러졌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맨 오른쪽) 한미사 동료들과 함께 ]

 

 

 

전태일 - " 어느 청년 재단사의 꿈 '

 

1970년 11월 13일 오후 2시경,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1948~1970)이

자기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여 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고 외쳤다. 다음날 그는 자기가 못다 이룬 일을 꼭 이루어 달라고 어머니와

동료들에게 다짐을 받은 후 명동 성모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 사진3. 근로감독관에게 쓴 전태일의 편지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

 

 

 

전태일은 1948년 8얼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66년 그의 나이 17세에 평화시장 뒷골목

동일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1967년 2월 24일에 그는 마침내 바라던 재단사가 되었지만

하루 15시간의 중노동 속에서 폐병으로 각혈한 미싱사 처녀 노동자가 해고 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1969년에 동료 재단사들을 설득하여 평화시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 '바보회'를 결성하고, 그 회원을 통하여 노동실태 설문

조사를 하고 이를 근거로 근로기준법상 감독권 행사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로

부터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바보회'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해 조직확장에 열을

올리자 업주들은 그를 위험분자로 낙인찍어 해고하였고, '바보회'는 와해상태에 빠졌다.

 

 

 

[ 사진4. 전태일 분신자살 보도기사 ]

 

 

 

1970년 9월, 평화시장에 돌아온 전태일은 '바보회'를 재정비하여 '삼동친목회'로 조직을

일신하고, 그 첫 사업으로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재조사해 10월 6일에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 진정서는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켜 10월 7일에 각 석간신문에 일제히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요구조건은 차일피일 미루어 졌고,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삼동회 회원들은

10월 20일에 노동청 국정감사 기간에 노동청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웠으나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근로감독관의 이야기에 기만 당해 계획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지나자 저들은 '할대로 해봐라.'는 태도였고, 이에 분노한 삼동회 회원들이 10월24일 오후 1시

평화시장 국민은행 앞길에서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삼엄한 경비로 인해 실패 하였다.

다시 11월 7일까지 문제를 해결 하겠다던 약속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자 11월 13일에

'근로기준법화영식'을 결의하였다. 화영식이 삼엄한 경비와 경찰들의 몽둥이에 밀리던 중,

한 되가량의 석유를 온몸에 끼얹고 불을 붙인 전태일이 국민은행 앞길로 달려 나갔던 것이다.

 

 

 

[ 사진5. 전태일 분신 사망 후 운구와 오열하는 참배객의 모습 ]

 

 

 

전태일의 죽음은 고도성장과 근대화의 꿈에 잠겨있던 한국 사회에 크나큰 충격과 죄절감을

안겨 주었다. 특히, 노동행정 당국은 물론 노도계와 학원 및 종교계 등 사회 각 방면에 끼친

충격은 지대한 것이었다. 11월 16일에 서울대학교 법과대 학생들의 가칭 '민권수호 학생연맹

준비위원회'가 발족 된 데 이어, 서울대 상대와 문리대, 이화여대, 고려대, 연세대 등의

학생들이 노동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추도식과 시위를 벌였다. 11월 18일에

한국노총은 창동교회에서 전태일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으며, 종교계에서도 추도예배를 가졌다.

 이처럼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정치,사회,종교,언론 등 사회 전 부분에 걸쳐 커다란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면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 되었으며, 70년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2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 2009년   제임스 릴리 전 한국대사 별세

 

▶ 2009년   명래제약 창업주 이용재 여사 별세

 

▶ 2008년   박춘호 국제해양재판관 별세

 

▶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개막(2005.11.12~11.19)

 

▶ 2004년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 MBC라온건설인비테이셔널 스킨스게임 출전위해 제주 방문

 

▶ 2001년   홈런왕 맥과이어 명예로운 은퇴

 

▶ 2001년   미국 여객기 뉴욕서 추락, 260명 사망

 

▶ 1999년   안산 SW 지원센터 설립

 

▶ 1996년   제1회 국제 CDMA 회의 개최

 

▶ 1996년   사우디항공 보잉 747-100기와 카자흐스탄 민항기와 인도 뉴델리 상공에서 충돌. 349명 사망

 

▶ 1994년   영국의 소설가 스튜어트 사망

 

▶ 1992년   영종도 국제공항 기공식

 

▶ 1991년   아태지역 경제협력(APEC) 제3차 각료회의 서울서 개최

 

▶ 1990년   빌게이츠 컴덱스쇼 기조연설에서 `손가락 끝의 정보`라는 문구로 미래 컴퓨팅의 비전 제시

 

▶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본 제125대 왕에 즉위

 

▶ 1989년   전교조, 전태일노동상 수상

 

▶ 1989년   문학평론가 임종국 별세

 

▶ 1989년   서양화가 하인두 별세

 

▶ 1989년   최점환 WBC 스트로우급 세계챔피언 획득

 

▶ 1989년   스페인 노동운동가 파시오나리아 작고

 

▶ 1987년   평화민주당 창당대회(총재 김대중)

 

▶ 1987년   전화접수 우편환 송금제도 실시

 

▶ 1984년   미국 디스커버리호 고장위성 사상 처음으로 회수

 

▶ 1983년   일본, 랭군사건의 제재조치로 북한 과학대표단 입국 불허

 

▶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방한

 

▶ 1982년   폴란드 정부, 11개월 만에 바웬사 석방

 

▶ 1982년   소련 공산당 서기장에 유리 안드로포프 선출

 

▶ 1981년   전두환대통령, 김일성 서울방문 제의

 

▶ 1981년   한국방송사업단 창립

 

▶ 1980년   미국 보이저 1호, 토성 근접 촬영

 

▶ 1980년   정치쇄신위원회, 정치활동규제 대상자 811명 발표

 

▶ 1979년   공화당총재 김종필 선출

 

▶ 1977년   자이레서 화산폭발, 2천여명 사망

 

▶ 1974년   동아일보, 천주교도 인권회복기도회 기사로 경영진과 기자들의 의견충돌 12일자 휴간

 

▶ 1969년   중국 전 국가주석 유소기 사망

 

▶ 1969년   미국 후생성, DDT 사용금지

 

▶ 1965년   한일협정 비준안 일본중의원 통과

 

▶ 1964년   미국, 원자력잠수함 시 드래건호 일본 사세보항에 처음 기항

 

▶ 1964년   최초 대일 여객선 아리랑호 취항

 

▶ 1963년   희대의 살인마 고재봉 검거

 

▶ 1962년   '6억달러' 김종필.오히라 메모 작성

 

▶ 1962년   학사고시 실시

 

▶ 1961년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일본 방문해 이케다 수상과 한일국교정상화에 합의

 

▶ 1960년   민주당 구파, 신당 발기인대회를 통해 당명을 신민당으로 결정

 

▶ 1957년   미국 트리뷴지 여기자, 기사소스 증언거부로 금고형

 

▶ 1955년   서독군 발족

 

▶ 1953년   닉슨 미국부통령 내한

 

▶ 1948년   도쿄 군사재판, 전범 7명에게 교수형 선고

 

▶ 1945년   동양척식회사, 신한공사로 개칭

 

▶ 1942년   과달카날 해전서 일본 대패

 

▶ 1930년   런던에서 제1회 영국-인도 원탁회의

 

▶ 1929년   영화배우 겸 모나코 왕비 그레이스 켈리 출생

 

▶ 1921년   워싱턴 군축회의 개막

 

▶ 1920년   조선징발령 공포

 

▶ 1918년   독일 사회민주당, 민주공화국 선포

 

▶ 1915년   프랑스의 기호학자 롤랑 바르트 출생

 

▶ 1866년   중국 건국의 아버지 손문 출생

 

▶ 1857년   우루과이의 제2대 대통령(1835~38) 오리베 사망

 

▶ 1848년   그리스 언어학자 하드지다키스 출생

 

▶ 1840년   프랑스 조각가 로댕 출생

 

▶ 1746년   프랑스 물리학자 샤를 출생

 

▶ 1463년   동국지도 제작

 

 

 

 

[ 사진2.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승객 246명과 승무원 9명등 255명을 태운 아메리칸항공(AA) 소속 A300 여객기가

12일 미국 뉴욕 존 F.케네디국제공항을 이륙한 직후 추락, 탑승자 전원이 숨졌다.

아메리칸항공 당국은 정규 승객 외에 5명의 어린이가 보호자와 함께 탑승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이번 사고의 희생자는 260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미국 정부와 군은

사고직후 경찰과 소방대원, 긴급구조요원 모두에 대해 동원령을 내릴 수 있는 제1급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한편 추락 현장 상공 등 미국 전역에전투기 편대를 대규모로

발진시켜 놓았다.

 

 

 

[ 사진3.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뉴욕발 도미니카공화국행 아메리칸항공 소속 587편 항공기는 이날 오전 9시17분

(현지시간)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을 이륙한 지 4분 만에 공항에서 8㎞떨어진 뉴욕시

퀸스지역에 추락하면서 화염에 휩싸였다.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은 이 여객기의

추락으로 탑승자 255명 전원이 숨졌으며 퀸스지역 주민 6명이 실종되고 35명이

다쳤으며 이 일대 가옥 4채가 완전 파괴되고 10여채의 주택이 불에 탔다고 말했다.

당시 집 부엌에서 여객기 추락 장면을 목격한 한 여성은 "갑자기 비행기가 뒷집쪽으로

낮게 날아와 재빨리 몸을 엎드렸다"면서 "거대한 화염이 치솟아 창문 밖으로뛰어내려

길 건너편으로 대피했다"고 말했다.

 

 

 

 

[ 사진4.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추락 현장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곳에 사는 자네트 바라소는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거리로 달려나왔다"면서 "폭격을 받은 줄 알고 나도 아들 2명과 함께엉엉 울면서

집에서 뛰쳐나갔다"고 말했다. 여객기 추락 직후 긴급 구조요원들은 사고 현장으로 달려와

비행기 파편 더미등에서 지금까지 모두 161구의 시신을 발견했으며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희생자들에게 애도의 뜻을 표시했다. 미국 수사당국은 추락 원인과 관련, 테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으나 추락비행기 조종사가 추락 직전 연료를 버린 점 등으로

미뤄 사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정확한 추락 원인 규명작업에 나서고 있다.

 

 

 

[ 사진5.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은 조종석과 관제탑 사이에 특별한 교신이 없었으며

항공기 폭파 협박도 접수된 것이 없었다고 밝혔으며 콜린 파월 국무장관도 유엔안전

보장이사회에서 여객기 추락은 사고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조지 파타키 뉴욕 주지사는

추락 여객기의 조종사가 추락 직전 연료를 자메이카만 상공에 버린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는 비행기에 기술적으로 중대한 결함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낼 수도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메리 치아보 전 교통부 조사관도 A300기가 추락하기 직전 엔진이 떨어져

나왔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있었다면서 이 여객기에 사용된 제너럴 일렉트릭(GE)의

 CF6엔진은 과거에도 몇번 사고를 일으켰다고 지적했다.

 

 

 

[ 사진6.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매리온 블래키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 위원장은 추락 A300기의 비행기록장치

회수했으며 현재까지 파악된 모든 정보를 종합해 볼 때 뉴욕에서발생한 이번 A300기의

추락은 사고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한편 이 여객기의 목적지였던도미니카공화국의 

한국대사관(대사 김주억)과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도미니카무역관(관장 양국보)은 사고

여객기에 우리 교민이나 투자기업체 직원 등이 탑승했을 가능성을 놓고 사고 직후부터

수소문했으나 지금까지 한국인 탑승자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KOTRA의 양 관장은

 "다행히 오늘 산토도밍고에 도착할 예정이던 교민이나 투자업체의 미국 출장자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내일 또는 그 이후에 오거나 다른 비행기를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 사진7. 미국 여객기 뉴욕 추락 260명 사망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10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북한, NLL침범으로 서해에서 우리 고속정과 2분간 교전 ]

 

 

 

 

▶ 2009년   북한, NLL 침범...서해에서 2분간 교전  

 

▶ 2008년   '대우건설 인수 청탁' 이주성 전 국세청장 체포  

 

▶ 2005년   제1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일본 11.10~11.13)

 

▶ 2005년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방북

 

▶ 2004년   42세 로저 클레멘스, 메이저리그 사상 처음으로 7번째 사이영상 수상

 

▶ 2001년   아시아 최대 축구전용구장 '상암구장' 개장

 

▶ 2001년   중국 세계무역기구(WTO)에 정식 가입

 

▶ 2000년   국내 최대길이 서해대교 개통

 

▶ 1997년   디지털 TRS 상용서비스 개시

 

▶ 1990년   민중당 창당

 

▶ 1983년   MS, GUI 운용체계(OS) 윈도우 최초 공개

 

▶ 1982년   소련 서기장 브레즈네프 사망

 

▶ 1977년   한국여자배구 월드컵대회서 최초의 소련팀 격파

 

▶ 1977년   북한외교관, 밀수사건으로 노르웨이서 추방

 

▶ 1973년   자카르타서 제1회 신생국경기대회 개최

 

▶ 1965년   문화대혁명의 발단이 된 눈문 '신편역사극 해서파관(海瑞罷官)을 평한다' 문회보에 발표

 

▶ 1964년   기자협회보 창간

 

▶ 1961년   최고위, 장면 전총리의 연금 해제와 불기소 발표

 

▶ 1956년   진보당 창당. 위원장 조봉암, 간사장 윤길중

 

▶ 1955년   메디칼센터 설치결정

 

▶ 1952년   트리그브 리 유엔사무총장 사표제출

 

▶ 1951년   미국 뉴저지-캘리포니아간 직통 전화 최초 성공

 

▶ 1951년   미-영-불-터키 방위기구 설치계획을 발표

 

▶ 1950년   한-미 화폐환율 2,500대 1로 인상

 

▶ 1939년   일제, 창씨개명제 공포

 

▶ 1938년   케말 파샤 터키 초대 대통령 사망

 

▶ 1937년   브라질 신헌법 공포. 독재 성립

 

▶ 1934년   중국 국민정부군, 서금 점령

 

▶ 1920년   조선교육령 개정 공포

 

▶ 1915년   동경 유학생 이광수, 신익희, 장덕수 등 조선학회 설립

 

▶ 1904년   경부선 철도 완공

 

▶ 1891년   프랑스 천재 시인 랭보 사망

 

▶ 1888년   유럽열국, 아프리카 노예무역 금지결의

 

▶ 1871년   스탠리, 리빙스턴 구해내

 

▶ 1851년   근대 발생학의 창시자인 영국의 동물학자 밸푸어 출생

 

▶ 1759년   독일 극작가 쉴러 출생

 

▶ 1541년   스위스 의학자 겸 화학자 파라셀수스 사망

 

▶ 1483년   독일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 출생

 

▶ 1389년   고려, 지진 발생

 

 

 

 

[ 사진2. 북한, NLL침범으로 서해에서 우리 고속정과 2분간 교전 ]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약 5개월 전인 2009년 11월 10일.대한민국의 서해 NLL 해상에서는

포 소리가 울렸습니다. 2009년 가을의 서해 NLL, 과연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제3연평해전, 서해교전?]

 

바다 위에 분계선이 정확히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 이유로, 종종 월선 소식을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업지도선 등이 NLL(북방한계선) 근처에서 조업하고

 있는 어선들에게 주의를 주는 등 신경을 많이 쓰고 있죠. 2009년 9월 4일, 북한의 경비정이

 백령도 동북방 10km 지점에서 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왔습니다. 실수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해상에서의 경계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긴장을 늦출 수 없는 파도가 일렁이는바다, 해수에 떠있는 금가루로눈이 부시던 2009년

가을, 그날도 남과 북은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NLL을 사이에 두고 경계를 하고 있었습니다.

 

 

 

[ 사진3. 선체 밀어내기 중인 참수리 325호정 ]

 

 

 

2009년 11월 10일 오전 10시 33분 경


우리 해군의 서해 백령도 레이더 기지에 NLL에 접근 중인
북한 경비정의 움직임이

포착되었습니다. 오전 11시 22분~25분 사이에 두 번에 걸쳐서 즉시 북상할 것을

요구하는 경고통신을 실시합니다. 그러나 이 말을 무시한 등산곶 383호는 오전

11시 27분에 NLL을 넘기에 이릅니다(대청도 동방 11.3km). 다시 해군 2함대사령부는

11시 28분~31분 사이 두 번에 걸쳐 되돌아가지 않을 시 사격하겠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경고한다내용으로 경고통신을 합니다.

별다른 반응이 없는 북한의 경비정에 사격할 것임을 재차 경고했지만,
북한의
경비정

(등산곶 383호)은 이를 무시한 채 무려 2.2km를 더 남하하기에 이릅니다. 더는 좌시할

 없었던 우리 해군의 고속정이 11시 36분에 북한 경비정의 전방 해상에 경고사격

가했습니다.  경고사격이 가해지자 드디어 북한의 경비정이 반응을 보입니다. 등산곶

383호에서 우리 해군의 고속정(참수리 325호정)을 향해 약 50여발을 직접

사격하기에 이르렀고, 우리 해군의 고속정도 40mm 함포 200여발로 즉각 응사

 합니다. 11시 37~39분, 약 2분에 걸쳐 교전이 벌어졌고 이 결과 북한의 등산곶

383호는 연기를 뿜으며 반파된 채 다른 군함에 예인돼 NLL을 통과해 북상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측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으며, 함선 외부 격벽에 15개의

 탄흔이 남았습니다. 이에 반해 북한의 피해는 극심했습니다. 경비정이 반파되었고,

 정확하지는 않지만 1명 사망했고 3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

 

 

 

[ 사진4. 대청해전 상황도, 연합뉴스 ]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 당시 '경고방송→시위기동→차단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5단계였던 교전규칙이 2004년 개정을 통해 '경고방송 및 시위기동→경고사격→격파사격'

 3단계로 간소화되었고 현장지휘관의 재량권이 강화된 것이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북한의 경비정을 신속하게 퇴각시키는 결과를 낳았던 것으로 평가되었죠.이 교전을 두고

한때 제3연평해전 혹은 서해교전으로 불리우기도 했었지만, 장소가 연평도 근해가 아니라는

 점, 제1,2 연평해전이라는 표기를 원용하는 한편 해군의 사기를 높이고 해군의 승리를 평가

한다는 근거로 대청해전이라 명명되었습니다.



[참수리 325호정의 두 번째 참전 그리고 2010년의 비극]

참수리 325호정. 이 고속정에는 또 다른 참전의 기억이 있습니다.
1999년 제1연평해전에

참전하여 ‘선체밀어내기’ 작전으로 우리 해군에 승리를 가져다 준 전력이 있습니다. 이 참수리

325호정이 그로부터 10년 후, 대청해전 제1선에서 북한의 경비정에 맞서 우리의 바다를 다시

 한 번 지켜냈습니다.

 

 

 

[ 사진5. 대청해전 후, 전투상황을 전투배치 모습 재연중인 참수리 승조원들, 연합뉴스 ]

 

 

 

또한 제2연평해전에서 서해의 꿈으로 잠들었던 참수리 357호정 역시도 제1연평해전에

참전한 전력이 있었습니다. 제1연평해전 당시 참수리 357호정의 정장이었던 연제영 소령이
대청해전에서는 고속정 233 편대장으로 참전하여
현역 장교로는 최초로 해전을 통해 두 번의

무공훈장을 수여받았다고 합니다. 연제영 소령 뿐 아니라 대청해전으로 우리의 바다를 지켜낸

해군장병 47명에게 그들의 노고를 격려하며 훈장, 포장, 표창이 수여되었습니다.(무공훈장 6명,

무공포장 5명, 대통령표창 4명, 국무총리표창 6명, 국방부장관표창 10명, 합참의장표창 16명).

 이 사건이 있은 후 같은 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사령부는 관영통신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하여 대한민국 해군에게 ‘남측이 무장도발 행위를 하였다’며 ‘사죄를 하고 책임을 지라’는

 요구를 합니다. 이틀 뒤,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기관지인 로동신문은 "남측의 계획된 도발"이라며

"값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엄포했죠. 그러면서도 북한은 해전의 피해에 대해 함구를 합니다.

그러나 이듬해 4월, 대청해전 직후 김정일이 ‘바다의 결사대’를 강조했었던 사실이 북한의 건군절

기념 방송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또한 대청해전에서 승리한 쪽은 북한 해군이라며 “작년 말 북방

한계선 고수를 운운하며 날뛰던 6척의 적(남한) 함선 무리를 징벌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이 뿐 아니라, 대청해전 17일 후에 서해함대사령부에 김정일이 방문하는 등 보복의 준비를 했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죠.

 

 

 

[ 사진6. 북한의 서해함대사령부 군관 김광일 ]

 

 

 

피해 상황을 함구하며 승리했다 주장하던 북한은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0년 10월,

 대청해전에 참전했다 전사한 북한병사 ‘김주혁’의 동상을 건립하고 그가 다녔던 평양

축전중학교를 김주혁 중학교로 개칭하는 행사를 노동신문을 통해 보도하며 그의 전사를 인정합니다.

제1,2연평해전을 비롯, 관련된 해전의 피해사실을 모두 함구해 오던 북한이 처음으로 해전의

피해를 시인한 것이죠.

 

 

 

[ 사진7. 대청해전에서 전사한 김주혁 ]

 

 

 

대청해전 발발 후 5개월여만에 침몰한 천안함.천안함 피격 사건 이후 벌어진 연평도 포격 도발.
북한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NLL은 위기 속에 지켜지고

 있습니다. NLL, 그리고 서해 5도. 짧지 않은 시간동안 그곳에 너무도 많은 희생과 눈물

묻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늘 첨예한 그곳에 우리는 우리의 친구, 가족을 ‘희생’과

 ‘의무’의 이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도 불안한 서해 NLL, 그곳은 군인들만 지키는 곳이

아닙니다. 군인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는 평범한 ‘국민’들이

지켜가고 있는 것이죠. 우리도 그 평범한 국민의 일원입니다. 그들에게만 모든 의무와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그곳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다시 한 번 바라보는 성숙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 사진8. 서해에서 기동중인 참수리 고속정 ]

 

 

글 출처 : http://mpva.tistory.com/1507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9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베를린 장벽 붕괴 ]

 

 

 

▶ 2005년   제5차 북핵 6자회담 개막(베이징)

 

▶ 2005년   무형문화재 제31호 탱화장 고재석(81)옹 별세

 

▶ 2001년   일본 자위대, 아프간에 2차대전후 첫 전쟁지역 함대 파견

 

▶ 2000년   국학자 이가원 교수 별세

 

▶ 2000년   중국 교개 3왕조(夏왕조-商왕조-왕조周)에 대한 구체적 연표 공식 발표, 하왕조 개국은 기원전 2070년

 

▶ 1999년   한평생 국내 오페라 개척한 성악대모 김자경 여사 별세

 

▶ 1996년   한국불교연 이사장 이기영 박사 별세

 

▶ 1996년   금호미술관 개관

 

▶ 1991년   이브 몽탕 사망

 

▶ 1990년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 1989년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 국가주석직 사임

 

▶ 1989년   한국-멕시코, 경제과학 및 기술협정 체결

 

▶ 1989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에 선출

 

▶ 1988년   조지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 1987년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일본 방문, 나카소네 수상과 회담

 

▶ 1981년   노태우 정무장관 유럽-아프리카 13개국 순방 등정

 

▶ 1970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망

 

▶ 1966년   경북선 철도 개통

 

▶ 1965년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 당선

 

▶ 1964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수상에 선출

 

▶ 1963년   일본, 우우타에서 탄광폭발 458명 사망

 

▶ 1961년   에쿠아도르 부통령 아르세메뇨, 대통령으로 승격 선서

 

▶ 1960년   캐네디, 미국 대통령 당선

 

▶ 1957년   캄보디아 중립법 공포

 

▶ 1957년   소련-인도 경제협력협정 조인

 

▶ 1954년   크메르 독립

 

▶ 1953년   캄보디아, 프랑스로부터 독립

 

▶ 1949년   미국,영국,프랑스 3국 외무장관, 독일문제 회담

 

▶ 1947년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 경향신문에 발표

 

▶ 1945년   파리서 2차대전 배상회의 개최

 

▶ 1945년   중국 국공내전 시작

 

▶ 1942년   미국, 프랑스와 단교

 

▶ 1938년   나치, 유태인학살 시작

 

▶ 1938년   일제, 경제경찰제도 실시

 

▶ 1937년   일본, 상해점령

 

▶ 1925년   히틀러 '친위대(SS)' 탄생

 

▶ 1920년   보통학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

 

▶ 1920년   단찌히 자유시 선언

 

▶ 1919년   김원봉 의열단 조직

 

▶ 1918년   독일 노동자 혁명, 빌헬름 2세 퇴위

 

▶ 1918년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사망

 

▶ 1905년   13도 유생들, 일본공사의 횡포 통박 성명

 

▶ 1899년   소파 방정환 출생

 

▶ 1878년   도산 안창호 출생

 

▶ 1874년   전두엽절제술을 개발한 포루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출생

 

▶ 1872년   미국 보스톤에 대화재. 850명 사망

 

▶ 1841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7세 출생

 

▶ 1818년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출생

 

▶ 1799년   나폴레옹, 쿠데타에 성공

 

 

 

[ 사진2. 베를린 장벽 붕괴 ]

 

 

 

동서 분단과 냉전체제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됐다.

동독내의 개혁열기가 비등하고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규모 이주가 계속되자

동독 스스로 분단의 벽을 허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지난 1961년 8월 에리히

호네커의 감독 아래 설치돼 동베를린 시민들의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을 막았다.

 

 

 

[ 사진3. 베를린 장벽 붕괴 ]

 

 

 

장벽은 폭 50m의 완충지대가 있는 66㎞의 이중철망과 55㎞의 단선철망, 25㎞의

콘크리트벽 등으로 구성됐다. 이 장벽과 구조물들을 제거하는데 4백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3년이 소요됐으며 1억마르크의 돈이 들었다. 제거된 흙과 시멘트는 무려

75만t이나 됐다. 동서독의 화해분위기는 이미 지난 196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일시 개방,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 인적교류 즉, 주민왕래를 실현

시키면서 시작됐다. 이것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분단국 최초의 자유왕래였다.

 

 

 

[ 사진4. 베를린 장벽 붕괴 ]

 

 

 

이를 계기로 양측간에 설치된 ‘철의 장막’은 차근차근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해나갔다. 첫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지 1년도 채 안돼 동서독은 1964년 부활절을 계기로 자유왕래를 실시

하기에 이른다. 1964년 서독은 서독국민이 제한없이 동독내 어느지역도 방문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동독은 60세이상 연금수혜자에게 서독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 사진5. 베를린 장벽 붕괴 ]

 

 

 

양독간의 꾸준한 교류가 계속되는 가운데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고

동구권에 민주화 개방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동서독 통일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개방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몰려들면서 동독의 체제 붕괴는 시간문제가 됐다. 여기에

피난민을 10만 명으로 예상한다는 서독 콜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동독에서의 탈출은

현대판 엑소더스로 발전했다. 동독의 각 도시에서도 연일 반정부 데모가 이어졌다.

 

 

 

[ 사진6. 베를린 장벽 붕괴 ]

 

 

 

10월 2일 1만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민주화 시위에 유화적인 에곤 크렌트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시위세력은 10월 30일에는 50만,

11월 4일에는 100만 명으로 불어났다. 마침내 11월 9일 , 소련은 동독에 비공산

정권이 들어서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날 저녁 7시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경계를 전면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밤10시부터 검문소를 넘기 시작했다. 이후 통일 협상을 시작해 1990년 8월 31일

45개 조항으로 이뤄진 통일조약에 서명했고 5주 뒤인 10월 3일 협정이 발효됐다.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

[11월7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힐러리 클린턴 ]

 

 

 

▶ 2010년   미얀마 20년만에 총선

 

▶ 2005년   감옥서 사상 첫 복싱 세계챔피언전(태국)

 

▶ 2005년   한국·벨기에 확대정상회담(서울)

 

▶ 2004년   이라크 임시정부, 이라크 전역 60일간 비상사태 선포

 

▶ 2004년   중국 뤄양 룽먼석굴서 백제불상 첫 발견

 

▶ 2000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여사 미국 뉴욕주 상원의원 당선

 

▶ 1998년   조용필 음악30년 콘서트

 

▶ 1997년   김영삼대통령, 신한국당 탈당

 

▶ 1997년   유학자 류정기 옹 별세

 

▶ 1993년   대전 EXPO 폐막

 

▶ 1992년   '프라하의 봄'을 주도한 두브체크 사망

 

▶ 1991년   SBS TV방송, 시험전파 발사

 

▶ 1990년   보리사브 요비치 유고 대통령, 동구권국가 원수로는 처음으로 방한

 

▶ 1984년   신병현 국무총리 권한대행 취임

 

▶ 1983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공사 따내

 

▶ 1983년   한국-파키스탄, 국교수립

 

▶ 1982년   서아프리카 오트볼타에 쿠데타

 

▶ 1982년   레바논, 한국에 파병요청

 

▶ 1980년   미국 영화배우 스티브 매퀸 사망

 

▶ 1980년   정치풍토쇄신위 발족. 위원장 김중서 대법원장

 

▶ 1978년   한미연합사령부 창설

 

▶ 1975년   해군기동연습서 함대함미사일 시험발사 성공

 

▶ 1973년   국민복지연금법안 확정

 

▶ 1972년   닉슨 미국대통령 재선

 

▶ 1962년   주은래, 인도가 중국의 주장선을 인정한다면 국경선에서 중국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통고

 

▶ 1962년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엘리너 루스벨트 사망

 

▶ 1955년   영국 애틀리 노동당수 사임

 

▶ 1953년   발칸3개국, 조약부속의정서에 조인

 

▶ 1953년   막사이사이, 필리핀대통령에 당선

 

▶ 1952년   레바논, 부녀자에 참정권 부여

 

▶ 1950년   유엔안보리, 한국대표 초청안 가결

 

▶ 1945년   함흥 학생반공의거

 

▶ 1932년   제2차 쌍성보전투

 

▶ 1931년   강서성 서금에서 중화소비에트 임시중앙정부 수립. 주석에 모택동

 

▶ 1923년   대전에서 전국형평사대표자대회

 

▶ 1922년   소련, 코민테른 기념 중앙 라디오 본 방송 개시(소련 라디오방송 정식 개시)

 

▶ 1921년   이탈리아, 국가파쇼당 창당

 

▶ 1917년   러시아 10월혁명 발생

 

▶ 1915년   월북 사학자 김석형 출생

 

▶ 1913년   영국의 박물학자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 사망

 

▶ 1913년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 출생

 

▶ 1911년   국세징수령 공포

 

▶ 1908년   어업법 반포

 

▶ 1903년   오스트리아의 동물학자 로렌츠 출생

 

▶ 1901년   청 이홍장 사망

 

▶ 1879년   러시아 혁명가 트로츠키 발생

 

▶ 1876년   한글학자 주시경 출생

 

▶ 1867년   마리 퀴리 부인 출생

 

▶ 1840년   러시아의 동물학자 알렉산드로 코발레프스키 출생

 

▶ 1818년   독일의 동물생리학자 에밀 뒤부아레몽 출생

 

 

 

 

[ 사진2. 힐러리 클린턴 ]

 

 

 

2000년 11월 7일 치러진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부인 

힐러리 로드햄 클린턴이 공화당의 릭 라지오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힐러리는 10%

 이상의 격차를 벌리며 라지오를 크게 앞질렀다.  힐러리는 이날 맨해튼에서 열린 축하

모임에서 “앞으로 6년간 여러분을 위해 정성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딸 첼시와 함께

 아내의 당선을 지켜본 클린턴 대통령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힐러리는 “남편과 딸에게 

감사한다”고 했을 뿐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는 않았다. 

 

 

 

[ 사진3. 힐러리 클린턴 ]

 

 

 

힐러리는 라이벌인 라지오와는 비교할 수 없는 지명도를 가지고 선거를 시작했지만 

쉬운 선거는 아니었다.  유세기간 중 불미스러운 스캔들이 그녀 발목을 붙들었고, 

선거 막바지에는 이슬람 단체로부터 선거 자금을 받은 사실이 알려져 곤경에 빠졌다. 

 

 

 

[ 사진4. 힐러리 클린턴 ]

 

 

 

공화당은이 이슬람 단체가 예멘에서 발생한 미 구축함 콜호 피격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공세를 펴는 무리수를 둬, 역효과를 냈다. 라지오는 뉴욕에 아무 연고가 없는 힐러리를 

`철새정치인`으로 몰아붙였으나 역부족이었다. 이에 비해 힐러리는 클린턴의 르윈스키 

스캔들 등 불리한 이슈는 피해가면서 뉴욕 유태인들의 표를 거머쥔 조지프 리버만 

부통령 후보를 선거에 투입해 성공을 거뒀다.

 

 

 

[ 사진5. 힐러리 클린턴 ]

 

 

 

 

 

블로그 이미지

블루레몬에이드

인서울학점은행 “인서울쌤” 문의☎ 02) 2088-8406 e-mail : egreen840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