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1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성수대교 붕괴사고 ]

 

 

[ 영상1. 성수대교 붕괴사고 ]

 

 

 

 

▶ 2011년   LS그룹 공동경영 기틀 잡은 구두회 명예회장 별세

 

▶ 2004년   헌법재판소, 충청권 행정수도 이전에 관한 ‘수도이전법’ 위헌 결정

 

▶ 2002년   뇌신경세포 재생기술 첫개발. 연대의대 박국인 교수팀. 뇌성마비 등 치료 길 열림

 

▶ 1998년   미 상원, 예일대 법대 교수 고홍주씨를 미 국무부 차관보로 인준

 

▶ 1996년   서울국제에어쇼96 개막(~27일, 성남 서울공항)

 

▶ 1995년   백제 27대 왕명( '창왕(昌王)' )이 명기된 사리감 발견

 

▶ 1994년   성수대교 붕괴

 

▶ 1992년   전 서울고검장 최대교씨 별세

 

▶ 1991년   한국-라트비아, 국교 수립

 

▶ 1990년   한국, 중국과 무역사무소 개설 합의

 

▶ 1989년   온두라스 항공사 소속 보잉 727여객기 추락. 131명 사망

 

▶ 1986년   내외통신, 북한이 금강산댐 공사를 시작했다고 평양방송을 인용 보도

 

▶ 1984년   프랑스 영화감독 트뤼포 사망

 

▶ 1981년   중공, 대만에 스포츠교류를 제의

 

▶ 1980년   환경청, 환경영향평가제 실시키로 결정

 

▶ 1977년   카터 미국대통령, 주한미군 지상군 철군보완 8억달러 한국에 무상공여토록 의회에 승인 요청

 

▶ 1973년   유엔안보리, 중동전쟁 종식에 관한 미소(美蘇) 공동안 채택

 

▶ 1969년   덴마크서 사상 첫 성(性)박람회 개막

 

▶ 1969년   브란트 서독수상 피선. 사민-자민당 연립 성립

 

▶ 1968년   민복기 5대 대법원장 취임

 

▶ 1967년   워싱턴서 대규모 반전시위

 

▶ 1966년   박정희 대통령 마닐라 7개국 정상회담 참석차 필리핀 방문

 

▶ 1964년   아베베, 도쿄올림픽 우승

 

▶ 1963년   유엔, 중공 가입안 부결

 

▶ 1963년   미국, 유럽과 태평양에 핵미사일 배치

 

▶ 1961년   미국 마이다스 미사일경보로케트를 발사

 

▶ 1959년   한국영화제작가협회, 영화의 날 제정

 

▶ 1953년   제3차 한일회담 10.15 구보타(久保田) 망언으로 무기휴회

 

▶ 1950년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할 목적으로 한 제네바협약 국제적으로 발효

 

▶ 1950년   국군기무사령부의 전신 육군특무부대 창설

 

▶ 1949년   일본, 재일교포학교 폐쇄령 발표

 

▶ 1945년   국립경찰 창설 (경찰의 날 제1회는 1946,10,21. 1957년부터 제도화)

 

▶ 1938년   일본군, 중국 광동 점령

 

▶ 1920년   청산리 대첩

 

▶ 1918년   체코 공화국 선언

 

▶ 1912년   일본 헌정당, 대한(對韓) 정책선언서 발표

 

▶ 1904년   일본 헌정당, 대한(對韓) 정책선언서 발표

 

▶ 1899년   에디슨, 전기 형광램프 발명

 

▶ 1898년   서강·한강·왕십리에 종두소 설치

 

▶ 1884년   갑신정변으로 우정총국 폐쇄

 

▶ 1878년   독일,사회민주당 진압법 공포

 

▶ 1833년   스웨덴의 발명가 알프레드 노벨 출생

 

▶ 1805년   넬슨 영국 해군제독, 트라팔가르 해전서 나폴레옹 함대 격파

 

▶ 1328년   명나라의 초대 황제 주원장 출생 

 

 

 

 

[ 사진2. 성수대교 붕괴사고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94년 10월21일 오전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다리인 성수대교가 붕괴 되었습니다. 저도 그때의 일을 매스컴을 통해 듣고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어느 누가 감히 한강을 이어주는 다리가 무너질꺼라

생각을 했겠습니까? 지금은 8차선으로 확장 개통되어, 옛 상흔은 말끔히

지워졌지만, 피해 가족들의 눈가엔 여전히 눈물이 고여 있습니다. 참혹했던

그때의 사건 속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 사진3. 성수대교 붕괴사고 ]

 

 

 

-  발 생 원 인  -

 

‘성수대교 붕괴사고’는 1994년 10월 21일 금요일 오전 07:40 경

서울 성동구 성수1가 - 강남구 압구정동 교량에서 발생하였다.
사고원인은 서울 전역에 가랑비가 내리고 있는 가운데 아침 출근과

 등교길을 서두르는 학생과 직장인 등 승객을 태운 버스와 승용차들이

 빗길을 조심스럽게 달리던 중 성수대교의 10번 째와 11번 째의 교각

사이 120미터 중 중앙 48미터의 현수트러스(Truss) 가 갑자기 푹 꺼지면서

 한강으로 내려앉았고 다리 위에 주행 중이던 차량 6대가 함께 추락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었다. 성수대교는 한남대교와 더불어 가장 사고위험이

교량으로 알려져 왔으나, 관계당국이 이를 무시하고 보수·보강을 (1992.12~

1993.12: 기초부위 일부 부식, 1993년 하반기: 교각상태 하부 세 곳 정도 불량)

제때에 실시하지 않았으며, 성수대교 붕괴의 직접적인 원인은 유효 단면적의

감소와 응력집중을 유발하게 한 용접시공의 결함과 제작오차 검사 미흡,

피로균열의 진전을 예방하지 못한 점검 및 유지관리 미비, 그리고 피로균열을

가속화시켜 규정이상 중량차량 통행 규제 소홀인 것으로 판단되었다.

 

 

 

 

[ 그림4. 성수대교 붕괴사고 ]

 

 

 

-  사 고 내 용  -

 

성수대교는 1977년 4월 9일 착공하여 1979년 10월 15일 2년6개월

만에 준공된 폭 19.4m, 길이 1,160.8m의 4차선 교량이다. 동아건설이

116억원의 공사비에 시공하였으며 기능 위주로 설계된 종래의 교량들과

 달리 미관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처음으로 거버 트러스(Gerber Truss)

공법에 의해 건설되었다. 성수대교는 개통 초에 반포대교, 잠실대교,

영동대교, 한남대교 등과 더불어 영동 신도시 개발로 형성된 강남·북간

도심과 부도심 간을 잇는 주요 교통 축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

하였으며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상계아파트단지와 분당신도시의

개발과 함께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붕괴

당시에는 강북 측으로 60,000대, 강북 측에서 강남 측으로 45,000대 등

하루에 105,000대의 교통량을 처리해 오고 있었다.

 

 

 

 [ 사진5. 성수대교 붕괴사고 ]

 

 

 

사고 후 현장 상황은 교량 붕괴 부분에서 달리 던 봉고차 1대와 승용차 2대가

 현수트러스와 함께 한강으로 떨어진 상태였고, 붕괴 경계지점에 있던 승용차

2대는 부재와 같이 떨어지다가 한강 물 속으로 빠져버린 상태였으며, 남단에서

북단으로 달리던 한성운수 16번 버스가 붕괴 경계 지점에 걸쳐 있다가 뒤집힌 채

떨어지면서 물 속에 미리 떨어져 있던 상판과 강하게 충돌하며 차체가 완전히

 

찌그러져 이 버스로 등교하던 학생과 직장인 등 수많은 사망자와 부상자로 

처참한 상태였다. 붕괴사고로 인한 인명피해는 총 49명이었으며 이중 사망 32명

(남 17, 여 15),부상 17명 (중상 3, 경상 15)이었다. 재산피해는 차량 6대 추락

(버스 1, 봉고 1, 승용차 4) 하였으며, 일반버스: 16번(한성 운수) 서울대공원 –

번동운행, 봉고: 서울 지방경찰청 소속 차량, 승용차: 세피아, 프라이드, 엘란트라,

르망 등이 추락하였다.

 

 

 

[ 사진6. 성수대교 붕괴사고 ]

 

 


성수대교는 교량 상판을 떠받치는 트러스(철강구조물)의 연결 이음새 용접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10mm 이상이 돼야 하는 용접두께가 8mm 밖에 되지 않았으며 강재 볼트

연결핀 등도 부실했던 것으로 검찰 조사결과 밝혀졌다. 관계 당국의 형식적인 안전점검,

관리소홀도 부실 시공된 다리의 붕괴를 앞당겼다. 관리 당국은 근본적인 보수 없이 녹슨

부분을 페인트로 칠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숨겼다. 또한 성수대교를 이용하는 차량대수가

급격히 늘어난 것도 붕괴사고의 한 원인이었다. 사고대책으로는 안전관리 측면에서

시설물의 관리자가 임의로 정한 기술이나 지침에 따라 관리하던 것을 1995년 4월 5일

「시설물 안전관리 특별법」제정으로 안전관리 체계를 법제화 하였다. 부실 설계 및

감리자에 대해 5년이하 징역 또는 5천만원이하의 벌금으로 부실설계 및 감리자에 대한

제재 강화 및 신설하였으며, 1995.6 시설물 안전 및 유지관리 업무지침서를 발간하였다.

 

 

 

[ 사진7. 성수대교 붕괴사고 ]

 

 


1995년 4월 26일부터 현대건설이 총 공사비 780억원을 들여 복구공사에 착수하였고

사고발생 2년 8개월 만인 1997년 7월 3일 차량 통행이 재개되었다. 이후, 다시 총 공사비

1,300억원을 들여 1998년 12월부터 8차선으로 확장 공사를 시작, 2004년 9월 17일

개통되었다. 확장된 성수대교는 트러스가 붕괴되어도 한강에 떨어지는 일이 없도록

낙교방지턱이 설치되었으며 교량등급도 2등교에서 1등교로 상향조정되었다.

 

 

 

[ 사진8. 성수대교 붕괴사고 ]

 

 

참고자료  삼성화재해상보험주식회사《위험관리 제100호 특집》삼성방재연구소, 2006
             중앙119구조대《재난유형별 사고사례집》중앙119구조대,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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