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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0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2010년   조선내화 창업주 이훈동 회장 별세

 

▶ 2009년   정부, 아프카니스탄 파병안 발표

 

▶ 2009년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타계

 

▶ 2005년   가장 오래된 광개토대왕비 유리원판 사진 공개

 

▶ 2002년   국산 초음속 항공기 T-50 첫비행 성공, 초음속기 보유 세계 12번째

 

▶ 2002년   중국, '양빈 재산몰수 . 국외추방' 북에 공식통보

 

▶ 2001년   초음속 경(輕)공격기 한.미 공동개발

 

▶ 2000년   동아건설, 채권단의 자금지원-워크아웃 중단 결의로 사실상 퇴출

 

▶ 2000년   팔레스타인 독립선포 연기

 

▶ 2000년   앙골라 여객기 추락 전원 사망

 

▶ 1999년   인천 호프집 화재로 중-고생 등 56명 사망

 

▶ 1998년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과 정몽헌 현대전자 회장, 평양에서 김정일 면담

 

▶ 1997년   유럽 12개국 공동상업위성 `아리안5호` 발사

 

▶ 1997년    대한민국 . 캄보디아 대사급 수교 합의 

 

▶ 1992년   프랑스 화가 존 미첼 사망

 

▶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9호 경기민요 `선소리산 타령` 예능보유자인 정득만씨 별세

 

▶ 1991년   중동평화회담 마드리드서 개막

 

▶ 1990년   서울 국제무역박람회 개막

 

▶ 1990년   영국-프랑스간 해저터널 관통

 

▶ 1988년   국내 가입전화 1천만회선 돌파

 

▶ 1987년   신민주공화당 창당(총재 김종필)

 

▶ 1983년   그레나다 북한 군사동맹

 

▶ 1981년   폴란드, 파업금지법안 의회에 제출

 

▶ 1981년   정전위 중립국감독위 소속 체코병사, 판문점 유엔군 관할지역으로 망명

 

▶ 1979년   일본, 오오히라(大平)내각 총사퇴

 

▶ 1976년   중앙정보부, 거문도 침투간첩 김용규의 자수 발표

 

▶ 1975년   스페인왕에 후안 카를로스 즉위

 

▶ 1974년   무하마드 알리. 조지 포먼에 KO승

 

▶ 1972년   탄도탄 요격 미사일 조약(ABM) 발효

 

▶ 1967년   소련 인류 최초로 무인원거리조종 위성 코스모스 186,188호 자동도킹 성공, 3시간 30분 궤도 돌고 분리

 

▶ 1967년   중국-인도네시아, 쌍방 외교관 완전철수 합의 (사실상 단교)

 

▶ 1966년   아베베 동아마라톤(서울~인천)서 2시간 17분 04초로 우승, 1위로 골인한 마지막 레이스

 

▶ 1963년   알제리와 모로코간 사하라전투 휴전에 합의(2일 재발)

 

▶ 1962년   이스라엘, 벤스비대통령 3선

 

▶ 1962년   유엔총회, 중국 가입안 부결

 

▶ 1961년   소련 공산당대회, 레닌묘에서 스탈린유골 추방 결의

 

▶ 1960년   부산 밀수깡패 100여명의 경관납치 구타사건

 

▶ 1959년   서울지검, 위장자수간첩 김승균 월북 직전 체포

 

▶ 1957년   혼혈아 80명 미국으로 첫 이민

 

▶ 1953년   일본-중국, 무역협정 조인

 

▶ 1948년   유엔임시총회, 총회에 대하여 남북평화교섭 달성시까지 점령군 계속 주둔 요청

 

▶ 1847년   미군정 장관에 딘 소장 취임

 

▶ 1947년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WHDLS

 

▶ 1945년   군정청, 출판등록제 실시

 

▶ 1943년   일화(日華)동맹조약 체결

 

▶ 1938년   미국, '화성인 습격했다' 대소동

 

▶ 1930년   일본 발명가 도요다 사키치 사망

 

▶ 1929년   나주역 사건, 광주 항거 시작

 

▶ 1922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로마 점령

 

▶ 1920년   경성복심법원, 3.1운동관계자 48인에 대한 공소심 경성복심법원에서 열림

 

▶ 1913년   부제(府制) 공포 (일본인거류민단법, 거류지제도철폐)

 

▶ 1910년   국제적십자 창시자 앙리 뒤낭 사망

 

▶ 1905년   러시아황제 니콜라이 2세 국민참정권 인정. 의회소집 선언

 

▶ 1885년   미국 시인 에즈라 파운드 출생

 

▶ 1871년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 출생

 

▶ 1861년   프랑스 조각가 부르델 출생

 

▶ 1861년   오스트리아, 루마니아와 동맹 결성

 

▶ 1823년   방직기 발명가 카트라이트 사망

 

▶ 1735년   미국 제2대 대통령 존 애덤스 출생

 

 

 

 

 

 

 

 

인천 인현동 호프집 화재
 
인천시 중구 인현동은 한때 10대들의 해방구였다. 제물포고·인천여고 등 학교가 밀집해서, 분식집·당구장·노래방 등 학생을 상대로 한 가게가 300여 곳이나 번창했다. 인천지역 중고생들 사이에서 ‘동인천’으로 통하는 집결지였다.
1999년 10월30일도 그랬다. 이날 제물포고·선인고·인천고 등 인천시내 10개 고교 가을 축제가 끝나자, 학생들은 인현동 골목으로 집결했다. 이곳에 위치한 라이브II 호프집에도 10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이날 저녁 7시, 50여평 규모의 호프집에 120명이나 북적이는 와중에 건물 지하에 있는 노래방 내부수리 공사장에서 불이 났다. 불은 계단을 타고 순식간에 2층과 3층사이로 번졌다. 소방차 15대와 구급차 19대, 소방관 180명과 경찰관 160명이 진화에 나서 35분만에 진화했다. 

 

 

   

 

 

 

 

그러나 피해가 컸다. 이날 화재로 2층 라이브II 호프집과 3층 그린당구장에 있던 10대 청소년 57명이 불에 타거나 연기에 질식해 숨졌다. 특히 2층 호프집에 있던 10대들 피해가 가장 컸다. 호프집은 탁자와 의자들로 빽빽이 가득 차 있어, 실내 통로 공간이 겨우 한 사람이 다닐 수 있을 만큼 좁았다. 밖으로 통하는 유일한 출입구 계단의 너비가 1.2m에 불과했다. 이 출입구가 막히면 실내에 있던 사람들은 밖으로 나갈 방법이 없었다. 창문이 있었지만 구조변경을 통해 통유리로 바꿔 달았고 베니어판을 덧붙였다. 결국 화재가 나자 미처 대피할 공간을 찾지 못한 채 서로 뒤엉켜 인명피해가 더 커졌다. 생존자들은 “비상구가 없고 창문도 대형유리로 완전 밀폐돼 있어 순식간에 연기와 불길 속에 갇혔다. 의자와 탁자가 빽빽이 들어차 있어 수십 명이 한꺼번에 뒤엉켰다”라고 사고 순간을 증언했다. 
 
화재가 난 건물은 4층이었다. 지하 1층은 노래방, 지상 1층은 음식점, 2층은 호프집, 3층은 당구장, 4층은 주택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4층 이하의 건물에 대해 별도의 비상계단을 설치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축 법규에 따라 별도의 비상계단 등 대피통로가 없었다. 유일한 탈출구가 바로 좁은 출입 계단이었다. 학생들은 사실상 폐쇄된 공간에서 빠져나갈 통로를 찾다 숨졌다.

 

 

 

 

 

 

법대로라면 이 호프집에는 10대가 출입할 수 없었고, 사고 당일 영업을 할 수도 없었다. 식품위생법과 청소년보호법은 청소년들에게 술을 팔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고 호프집은 미성년자의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10대들의 해방구로 통한 동인천은 이런 법의 사각지대였다. 당시 호프집 인근에 파출소가 있었지만 사실상 불법 영업의 무풍지대나 다름없었다. 법대로 단속을 하더라도 업주들이 무시하기 일쑤였다. 라이브II 호프집도 참사 열흘 전에 문제업소로 경찰에 적발되어 영업장 폐쇄명령을 받았다. 그런데도 이른바 ‘삐끼’를  고용해 청소년들을 끌어들인 뒤 문을 안에서 잠그고 ‘배짱 영업’을 계속하다 참사가 났다. 
 
사고 건물은 화재에도 무방비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건물은 지은 지 15년이나 된 노후건물이었다. 전기 배선이 난마처럼 얽혀있고, 방화시설이 미비해 화재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하지만 사고 발생 전에 이뤄진 정기소방점검에서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다.  처음 불이 난  지하 노래방 천정에 스프링클러가 애초부터 없었다. 불이 났을 때 화재경보기도 작동하지 않았다. 화재 전날 지하 노래방 공사 인부들이 공사에 방해가 된다며 소화분말액을 자동 분사하는 천장의 확산소화기 15대를 모두 제거하기도 했다. 초기진화 자체가 불가능한 셈이었다.

 

 

 

 

  

 

인현동 호프집 화재는 유치원생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씨랜드 참사 뒤 불과 넉 달 만에 일어나 충격이 더 컸다. 더구나 두 참사 모두 유독가스를 내뿜는 장식물이 희생을 키운 원인으로 똑같이 꼽혔다. 씨랜드 참사 때도 화재에 취약하고 유독가스를 발생시키는 스티로폼과 우레탄이 내장된 샌드위치 패널 때문에 피해가 컸는데, 인현동 호프집 화재에서도 노래방과 호프집의 내장재와 집기, 계단 장식물 등이 대부분 인화성이 강한 우레탄 등 합성수지 재질이 쓰인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뒤 인천 지역 15개 고등학교 대표들이 모여 ‘저희들에게 호프집에 출입하지 말라고 다그치기 전에 학생들이 모여 이야기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해 주십시오. 깨끗하고 올바른 행정을 펴주십시오’라는 공동 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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