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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6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제5대 대통령 선거 후보자 명부 ]

 

 

 

 

▶ 2000년   한-미 미사일협상 타결로 사(射)거리 300km 미사일 생산 가능

 

▶ 1999년   이미자, 세종문화회관에서 가수생활 40년 기념공연

 

▶ 1999년   한국군 상록수부대 150여명 동티모르에 파병

 

▶ 1998년   칠레의 전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영국경찰에 전격 체포

 

▶ 1998년   북아일랜드의 존 흄-데이비드 트림블, 노벨평화상 수상

 

▶ 1995년   전파법시행령 개정

 

▶ 1994년   헬무트 콜, 독일 총제로 재 선임

 

▶ 1994년   장한나, 로스트로포비치 첼로콩쿠르에서 최우수상 수상

 

▶ 1992년   과테말라 출신의 민권운동가인 리고베르타 멘추, 노벨평화상 수상

 

▶ 1990년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평양서 개최

 

▶ 1984년   남아공의 흑인종교지도자 데스몬드 엠필로 투투 주교, 노벨평화상 수상

 

▶ 1984년   통신종합센터 준공

 

▶ 1982년   수하르토 인도 대통령 방한

 

▶ 1981년   동서고속도로(대전~광주 175km)기공, 후에 올림픽고속도로로 개명

 

▶ 1979년   서울 성수대교 개통

 

▶ 1979년   이광요 싱가포르 수상 내한

 

▶ 1978년   요한 바오로 2세, 제265대 교황으로 즉위

 

▶ 1975년   스페인령 사하라서 모로코 35만명 평화행진

 

▶ 1974년   경주 98호 고분서 신라순금고배(高杯) 출토

 

▶ 1972년   자유학습의 날 실시

 

▶ 1964년   중국, 첫 원폭실험 성공

 

▶ 1963년   제5대 대통령선거, 박정희 당선

 

▶ 1963년   서독 아데나워 수상 사임, 후임에 부수상 에르하르트 취임

 

▶ 1962년   콩고 중앙정부군과 북부 카당가의 카당가군 휴전협정 조인

 

▶ 1962년   프랑스의 철학자이며 문학이론가 가스통 바슐라르 사망

 

▶ 1962년   한국-사우디아라비아, 국교수립

 

▶ 1960년   작곡가 현제명 별세

 

▶ 1956년   제3세대 프로그래밍 언어 `포트란` 발표

 

▶ 1952년   채플린 영화 `라임 라이트` 개봉

 

▶ 1951년   남원에 공비출현, 기관차 전복시키고 200여명 납치

 

▶ 1951년   이집트, '1936년 조약' 파기를 주장하며 폭동, 반영(反英)감정 고조

 

▶ 1946년   2차대전 독일전범 립벤도로프 등 10명 교수형

 

▶ 1945년   이승만 박사 귀국

 

▶ 1942년   인도, 태풍으로 인한 홍수로 4만여명 사망

 

▶ 1928년   독립운동가 박용만, 북경에서 피살

 

▶ 1918년   허영숙(이광수 부인), 총독부시행 의사시험에 여자로서 최초 합격

 

▶ 1916년   2대 총독에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임명

 

▶ 1916년   마거릿 생어, 산아제한클리닉 개소

 

▶ 1908년   알바니아 최초의 공산주의자 국가원수인 호자 출생

 

▶ 1907년   지리학자 육지수 출생

 

▶ 1902년   프랑스에서 지문(指紋)이 범죄자 식별법으로 채택

 

▶ 1901년   혜민관 설치

 

▶ 1888년   미국의 극작가 유진 글래드스턴 오닐 출생. 1936년 노벨문학상 수상

 

▶ 1863년   영국의 정치가 오스틴 체임벌린 출생. 1925년 노벨평화상 수상

 

▶ 1854년   아일랜드의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 출생

 

▶ 1793년   프랑스 마리 앙트와네트 단두대 처형

 

▶ 1435년   조선, 월식 발생

 

▶ 1434년   조선, 월식 발생

 

▶ 1426년   조선, 월식 발생

 

 

 

 

 

[ 사진2. 왼쪽-박정희 후보 , 오른쪽-윤보선 후보 ]

 

 

 

19631015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박정희는 윤보선을

제치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박정희는 유효투표의 46.6%4722천여

표를 얻었고 윤보선은 45.1%4546천 표를 얻어, 두 후보간 표차는

불과 15만여표에 불과했다. 이는 역대 대통령 선거 사상 최소 표차다.

대통령 선거 승리의 일등공신 지역은 경상도와 전라도였다. 박정희는

서울과 경기도, 강원도, 충청도 등 중부 이북에서는 모두 패배했지만,

경남북과 전남북, 그리고 제주도 등 남부 지방에서 크게 앞섰다. 경상도에서는

66만여 표를 더 얻었고 전라도에서도 35만여 표 차이가 났다. 15대 대통령 선거

결과와 관련 가장 관심을 받은 지역은 호남이었다. 전통적으로 야당의

지지기반이었던 호남에서 윤보선보다 박정희에게 던진 표가 더 나온 것은

예상밖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 사진3. 제5대 대통령 선거 벽보 ]

 

 

 

 

어떻게 그런 예상외의 결과가 발생했던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존재하지만, 당시 대통령 선거 결과 분석에서 가장 흥미로운 주장

가운데 하나가 밀가루 선거. 박정희가 밀가루를 이용해 63년 대통령

선거에서 호남 지역을 비롯해 남부 지방의 표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런 주장을 하는 몇 가지 사례다. 밀가루가 선거 직전 주로 태풍

셜리의 피해를 입은 남부지역에 집중적으로 살포되었다는 점도 이 지역 표의

동향과 관련해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으로 여겨진다”(정치학자 김일영)

농어촌에서 박후보의 표가 많이 나왔던 것은 극심했던 흉년에 구제 사업을

잘했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들은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구호를 받았으나

역시 박의장에서 호의를 가졌을 것이다. 흉년이 극심하게 든 영남과 호남에서

박후보가 압승한 것은 충분치는 못하나마 구호양곡을 보내주는데 애썼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KOC위원 유한철)

 

 

 

 [ 사진4. 제5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

 

 

 

 

극심한 수재와 한재를 당한 영호남에서 정부의 구호사업이 활발했었던데도

힘을 입었을 것이다.”(변호사 이명환) 도시 서민층과 농촌을 밀가루로 범벅해

놓았으니, 그 상황에서 박정희가 대통령에당선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음식 칼럼니스트 김학민)

이런 분석이 나올 만 했다. 63년 여름 태풍 셜리가 호남평야를 덮여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했고 가을 쌀농사는 대흉년을 기록했다. 이 때문에 쌀 소동이 일어나고

 매점매석이 판을 치고 있었다. 더 심각한 것은 9월 중순이면 정부가 보유한 식량마저

 바닥날 가능성이 높았다는 사실이다.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두고 터진 태풍

피해는 박정희에게 악재 중의 악재였다. 도탄에 빠진 민생을 구하기 위해 나섰다는

군정에 대한 세간의 인심은 바닥에 떨어질대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청와대 입성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 사진5. 제5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 ]

 

 

 

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박정희가 뽑아든 카드가 바로 밀가루 수입이었다.

당시 박정희는 캐나다와 호주산 밀가루 215천톤을 국내에 들여와 판매

대금의 일부는 정치자금으로 활용했고, 일부는 수재민 구호용이라는 명분

아래 태풍 셜리에 의해 막대한 수재를 입은 남부지방의 수재민과 도시

서민들에게 무상으로 배포했다. 구호용이라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당시

밀가루 배포는 사실상 선거운동의 일환이었다. 이와 관련 중앙정보부장으로

 약 6년여간 박정희를 보필했던 김형욱은 영남과 호남 특히, 박정희의 득표가

 취약하다고 판단되는 호남지방은 설상가상으로 태풍 셜리호가 강타해 수많은

 수재민들이 한층 심각한 식량난에 빠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집권자인 박정희가

 자기 재량대로 사용할 수 있는 밀가루를 도합 215000톤이나 확보했다는 것이다

.”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 사진6. 제5대 대통령 선거 개표 광역시, 도별 우세지역 ] 

 

 

 

 

게다가 박정희는 내심 선거운동을 위한 것이면서도 겉으로는 수재민 구호라는

일견, 매우 합리적인 이유를 붙여 식량을 무상으로 배포할 수 있는 명분상의

고지까지 차지하고 있었다.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들어온 도합 215000톤의

밀가루가 번갯물에 콩 구워 먹듯이 재빠르게 유용되는 것을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그 밀가루 배포는 대통령 선거 양상을 바꿔놓고도 남음이

 있었다. 문제의 밀가루는 그 상당 부분이 수재민, 특히 호남지방의 수재민에게

박정희의 자애스런 뜻을 곁들여 무상으로 배포되었고, 나머지는 민간업자에게

헐값으로 불하하여 막대한 정치자금을 확보하는 데 이용되고 있었다.”

그런 상황 때문이었을까? 김형욱과 육사 8기 동기이자 당시 중앙정보부

국내정치담당 제3국장이었던 김영민은 김형욱에게 부장님, 이러다가는 밀가루

대통령이 나오겠군요라고 말했다는데, 이는 현실이 되었다. 실제 박정희는 임기

 내내 야당측으로부터 밀가루 대통령이라는 공격을 받아야 했으니 말이다.

 

 

 

 

[ 사진7. 제5대 박정희대통령 취임사 ]

 

 

글 출처 : http://blog.daum.net/truthonly/13436977

사진 출처 : 위키백과/선거통계시스템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nstn001&logNo=220438194878

 

참고문헌

김경재, 김형욱 회고록 2: 혁명과우상(인물과사상사, 2009),151-179.

강준만, 한국현대사산책 1960년대편 2(인물과사상사, 2004).

김학민, <독재자의 밀가루는 달콤했다>, 한겨레21, 20021219, 128.

<표차 15어제와 내일>, 동아일보, 19631017, 2.

<‘한표의 진단 10.15 선거 앙케트’>, 동아일보, 1963101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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