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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0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사진1.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동상 ]

 

 

 

 

 

▶ 2010년   세계적 소프라노 조안 서덜랜드 별세

 

▶ 2010년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별세

 

▶ 2009년   100년  앙숙 터키-아르메니아 국교수립

 

▶ 2005년   제8차 세계화상대회(世界華商大會) 개막(서울 코엑스)

 

▶ 2005년   북한 조선노동당창건 60주년 기념행사(김일성 광장)

 

▶ 2004년   영화 ‘슈퍼맨’ 주인공 미국 배우 크리스토퍼 리브 사망

 

▶ 2000년   세계최초 여성 총리 바다라나이케 前 스리랑카 총리 사망 

 

▶ 1998년   국악신동 유태평양군 `흥보가` 3시간 완창   

 

▶ 1997년   뮤지컬 퍼포먼스 `난타` 초연

 

▶ 1995년   로버트 루카스, 노벨경제학상 수상 

 

▶ 1995년   이탈리아 패션 디자이너 파올로 구치 사망

 

▶ 1994년   `넷스케이프 내비게이터` 첫 출시

 

▶ 1993년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그리스 총리로 당선

 

▶ 1993년   서해페리호(110t급) 침몰

 

▶ 1991년   서울대 규장각, 국내最古의 지도로 추정되는 동국지도 공개

 

▶ 1990년   남북한영화제 개막(~14일, 뉴욕)

 

▶ 1985년   영화배우 율 브리너 사망

 

▶ 1983년   영국의 연극, 영화배우 랄프 리처드슨 사망

 

▶ 1981년   서독 본에서 30만명 반핵집회

 

▶ 1981년   시아가 자메이카수상 방한

 

▶ 1980년   알제리 대지진

 

▶ 1980년   이라크, 북한과 단교발표

 

▶ 1980년   북한 제6차 노동당대회 10년 만에 개막

 

▶ 1980년   충북 보은군 보은읍 어암리 3년산성에서 국내최고인 5세기경의 서문터(4.8m×3.3m) 발견

 

▶ 1980년   공직자 재산등록제 실시검토 발표

 

▶ 1979년   청평 양수발전소 완공

 

▶ 1975년   어린이대공원에 어린이회관 개관

 

▶ 1973년   스피로 애그뉴 미국부통령 탈세혐의로 사임

 

▶ 1973년   해병대, 해군에 통합

 

▶ 1971년   서울 북악터널 개통

 

▶ 1970년   피지,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67년   알제리에서 저개발국 77개국회의 개최

 

▶ 1964년   제18회 도쿄올림픽 개막

 

▶ 1963년   부분핵실험금지 조약(PTBT) 발효

 

▶ 1963년   서울가정법원 개원

 

▶ 1963년   헤롤드 맥밀란 영국총리 사임 결정

 

▶ 1962년   인도, 태평양지역 10차 수산(水産)이사회 조선호텔서 개막

 

▶ 1962년   한국-아이슬란드 국교 수립

 

▶ 1962년   약의 날 제정

 

▶ 1961년   미국, 쿠데타로 새로 수립된 시리아 신정부 승인

 

▶ 1957년   육당 최남선 사망

 

▶ 1946년   말레이지아연방 독립선언

 

▶ 1945년   김일성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설치

 

▶ 1935년   거슈인 작곡, 오페라 `포기와 베스` 초연

 

▶ 1932년   이봉창 의사 순국

 

▶ 1932년   세계최대 레닌발전소 준공

 

▶ 1928년   독립운동가 조명하 순국

 

▶ 1919년   손문, 중화혁명당을 개조한 중국국민당 결성

 

▶ 1914년   오성학교 조선인 야구팀과 용산철도구락부 일본인 팀, 조선이 이기자 경기 후 난투극 벌여

 

▶ 1914년   조선호텔 개업   

 

▶ 1913년   원세개, 중국대통령에 취임. 일본-러시아-영국-독일, 중국 승인

 

▶ 1911년   중국 신해혁명 

 

▶ 1905년   대한적십자병원 개원

 

▶ 1905년   노르웨이-스웨덴, 분리법 확정

 

▶ 1902년   도량형규칙 공포

 

▶ 1901년   스위스 조각가 알베르토 자코메티 출생

 

▶ 1897년   미국 장로회 선교사 베어드, 평양에 숭실학교 설립

 

▶ 1883년   부산~나가사키(長崎) 해저전선 부설 착공

 

▶ 1877년   `모리스` 자동차를 처음 생산한 영국의 너필드 출생

 

▶ 1861년   노르웨이 탐험가 난센 출생

 

▶ 1856년   추사 김정희 선생 사망

 

▶ 1816년   현대 공중보건 서비스의 기초를 세운 영국의 의사 사이먼 출생

 

▶ 1813년   이탈리아 오페라작곡가 주세페 베르디 출생

 

▶ 1446년   세종, 공문서에 한글 사용(세종 28년)

 

 

 

 

[ 사진2.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28년 10월10일 우리나라를 위해

순국한 한 독립운동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바로 조명하

독립운동가입니다. 여러분은 조명하 선생에 대해서 들어보신

적 있으신지요? 조명하 선생은 한말 독립운동가로서 일왕의 장

인을 독 묻힌 단검으로 공격하여 처단했는데요. 이 사건으로

일본은 한때 큰 충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의 이러한

나라사랑 정신과 업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민들이

선생을 알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에게 많이

알려지지 못했던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님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사진3.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

 

 

 

조명하 선생은 1905년 음력 4월 8일 황해도 송화군 하리면

장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은 일찍이 총명하고 강직한

성품으로 일제에 탄압받는 민족의 쓰라림에 눈을 떴는데요.

당시 조선사회의 주류는 다름 아닌 일본유학파였는데, 선생은

학업과 경제적인 문제, 그리고 조국독립의 염원을 해결하기

 위해 1926년 3월에 일본으로 가기로 결심합니다.

일본 오사카에 도착한 조명하 선생은 오사카에서 공장직원과

상점원으로 일하면서 오사카상공전문학교 야간부에서 고학했습니다.

이때 선생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많은 차별대우를 받기도 했는데요.

선생은 이 모든 것을 극복해나가면서 조국독립의 염원을 굳혀갔습니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조선인에 대한 일제의 삼엄한 감시는 심해져갔고

경제적 곤란함은 선생의 일본생활을 힘들게 했는데요. 결국 선생은 이

러한 이유로 일제의 또 다른 식민지, 대만 행을 결심하게 됩니다.

 

 

 

[ 사진4.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동상 ]

 

 

 

대만에 도착한 선생은 일본인이 운영하는 차원의 농장에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인과 대만인 사이에서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가 않았습니다. 선생은 찻집에서

 매달 10원을 받고 일하면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일제하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대만 주민들의 실상을 보았고, 더더욱 곤궁해지고

있는 자신의 현실에 매우 곤란함을 느껴 고향에 돌아가는 것마저

어려운 것이 아닐까 생각하며 낙심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일제는

중국을 침략하기 위해 일본의 산둥성 출병을 준비하고 있었고

대만에도 많은 일군 병력을 배치했는데요. 이때 선생은 그들 중 육군

특별검열사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일본 왕 히로히토의 장인이며

육군대장, 군사 참의관이라는 사실을 알아내서 그를 척결할 준비를 합니다.

 

 

 

[ 사진5.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이 척결 한 니노미야 구니히코가 일본 왕 히로히토의 장인 ]

 

 

 

1928년 5월 14일 아침 9시 55분 타이중 다이쇼초 도서관 앞.

조명하 선생은 일찍이 구니노미야 구니히코가 대만에 있는

군부대를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곳에서 그가 지나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구니노미야가 탄 차가 모퉁이를

돌기 위해 속도를 줄이고 있었고 그때 조명하 선생은 군중 속에서

뛰쳐나와 차에 올랐습니다. 이때 당황한 운전사는 속력을 냈지만

선생은 독 묻은 단검을 구니노미야에게 던졌고, 단검은 구니노미야의

목을 스쳐 가벼운 상처를 입힌 후 운전사의 등에 떨어졌습니다. 결국

선생은 주변에 있던 일본군에게 체포되었는데요. 선생은 그 순간에도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 사진6.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단검 ]

 

 

 

타이중 경찰서로 압송되어 취조를 받았던 조명하 선생은 6월 14일에

타이페이 형무소로 이송되어 독방에 수감되었는데요. 선생은 타이완

고등법원 특별공판정에서 ‘황족위해죄와 불경사건’으로 판결 받아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와 대만 총독부는 선생이 일으킨 의거를

 염세주의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던 청년이 저지른 우발적인 사건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조선과 중국에 반일 감정이 번질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 사진7.조명하 선생이 수감된 대중형무소 일대에 남겨진 형무소장 관사 ]

 

 

 

조명하 선생은 순국직전에 이러한 유언을 남겼습니다. “할 말은 없다.

조국의 광복을 못 본채 죽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다. 저 세상에 가서도

독립운동을 계속 하리라.” 결국 조명하 선생은 그해 10월 10일 타이페이

형무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이 순국한지 3개월 17일 뒤인

1929년 1월 27일에는 일본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가 선생이 던진 단검의

 극약으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 후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사진8.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의거 현장 대중주립도서관 ]

 

 

 

지금까지 조명하 선생의 삶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일찍이 우리나라

독립에 눈을 뜨고, 자신의 20대 청춘을 나라를 위해 바친 선생의 삶이

존경스럽기만 합니다. 무엇보다 어린나이에 일왕의 장인을 척결할 계획을

세우고 실천했다는 점을 보아 선생이 우리나라를 얼마나 많이 사랑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이 기사를 통해 일생을 조국독립을 위해 몸 바쳤던

조명하 선생을 마음속으로 추모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앞으로 많은 국민들이

조명하 선생에 대해 관심을 갖고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9. 독립운동가 조명하 선생 동상 ]

 

 

글 출처 : http://mpva.tistory.com/m/post/2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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