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28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유관순 열사 순국

 

 

 

 

▶ 2009년   설매리 여사 별세

 

▶ 2000년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전 총리 사망

 

▶ 1999년   현대남녀농구선수단, 평양서 북한농구팀과 친선경기

 

▶ 1998년   마크 맥과이어 미 메이저리그 사상 시즌 70개 최다 홈런기록 수립

 

▶ 1998년   박찬호, 메이저리그 진출 3년만에 시즌 15승 달성

 

▶ 1997년   한국축구, 월드컵 본선 4회 연속진출

 

▶ 1994년   에스토니아 여객선 침몰 대참사 - 900명 이상 몰사

 

▶ 1992년   노태우 대통령, 한국 대통령으로 첫 북경 방문해 한중정상회담

 

▶ 1990년   전쟁기념관 기공

 

▶ 1989년   마르코스 전 필리핀 대통령 망명지 하와이서 사망

 

▶ 1982년   한강종합개발사업 착공

 

▶ 1978년   교황 바오로1세 서거

 

▶ 1977년   일본 적군파, 일본항공(JAL)기 납치

 

▶ 1977년   허담 북한 외무장관 미국 방문

 

▶ 1970년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 심장병으로 사망

 

▶ 1970년   산체스 엘살바도르 대통령 방한

 

▶ 1969년   서독 총선거. 기민당 신승

 

▶ 1968년   북악 스카이웨이 개통

 

▶ 1966년   아르헨티나 반(反)영국 폭동

 

 

▶ 1966년   유엔총회서 인도네시아의 UN복귀를 발표

 

 

▶ 1965년   필리핀 타알화산 폭발, 약2000명 사망

 

 

▶ 1963년   도미니카의 후앙 보슈 전(前)대통령은 쿠데타로 실각 후 망명

 

 

▶ 1963년   미국 처음으로 원자력 이용한 인공위성 발사

 

 

▶ 1963년   프랑스-독일협정. 아프리카대륙에서의 양국 세력 확정

 

 

▶ 1963년   영국-인도네시아군, 사라와크에서 무력충돌

 

 

▶ 1961년   시리아서 쿠데타, 통일아랍공화국서 이탈

 

 

▶ 1958년   프랑스 제5공화국 헌법 국민투표에 의해 승인

 

 

▶ 1956년   장면 부통령 저격사건

 

 

▶ 1950년   정부, 서울 환도

 

 

▶ 1950년   산돌 손양원 목사 순교

 

 

▶ 1950년   나토(NATO)공동방위군 창설

 

 

▶ 1950년   이승만대통령, 38선이북 진격 명령

 

 

▶ 1949년   미국, 대외군사원조법 성립

 

 

▶ 1948년   정부, 남북교역 중지 선언

 

 

▶ 1945년   현준혁 암살

 

 

▶ 1939년   독일-소련 우호조약 조인(폴란드분할점령 결정)

 

 

▶ 1937년   국제연맹 총회, 일본 비난결의를 만장일치로 채택

 

 

▶ 1920년   유관순 열사 순국

 

 

▶ 1902년   자연주의 문학운동의 창시자, `목로주점`의 에밀 졸라 사망

 

 

▶ 1895년   프랑스 생물학자 파스퇴르 사망

 

 

▶ 1885년   한성전보총국 개국 한성-인천 최초 전신시설 개통

 

 

▶ 1885년   우리나라 최초의 전신선, 서울-인천 간 가설

 

 

▶ 1864년   제1인터내셔널(국제노동자협회) 창립

 

 

▶ 1850년   미국, 해군 및 상선에서 태형을 폐지

 

 

▶ 1841년   프랑스의 정치가 클레망소 출생

 

 

▶ 1825년   콜롬비아의 3선 대통령 누녜스 출생

 

 

▶ 1803년   프랑스 소설가 메리메 출생

 

 

 

 

여러분들은 928일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바로 유관순 열사가 3·1운동에 참여하고 일제의 폭거에 끝까지 저항하다 서대문 형무소에서 순국한 날입니다.

 

 

 

 

 

유관순 열사 (출처: 국사편찬위원회)

 

 

 

 

올해는 광복 70년이자 유관순 열사가 순국한지 95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번 포스트에서는 유관순 열사의 생애를 살펴보고 그 분이 3·1운동을 통해 추구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고자 합니다.

 

 

유관순 열사와 3·1운동

 

만세를 외치며 행진하는 시위군중 (출처: 3·1운동 영문 화보집, 상해 대한적십자회)

 

 

 

▲ 광복 70년 독립운동가 70인의 이야기 유관순 열사 편 (출처: 국가보훈처 유튜브)

 

 

 

유관순 열사의 아버지는 향촌 유지들과 교회를 세우고 구국운동과 민중 계몽운동을 했습니다. 유관순 열사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민족의식을 키웠습니다. 이화학당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던 1919. 일제의 무자비한 탄압과 폭정으로 민중들의 망국에 대한 서러움과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누적된 상황 속에서 3·1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납니다. 신식 교육을 받으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해온 유관순 열사를 비롯한 이화학당 학생들은 부당한 민족현실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조선총독부는 학생들의 열의를 짓밟으려는 듯 이화학당에 강제로 휴교령을 내립니다. 그럼에도 열사는 고향인 천안으로 돌아가서도 독립선언서를 들고 돌아다니며 만세운동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41, 천안 아우내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아우내 장터에는 장꾼과 시위 군중이 모여들었습니다. 3천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커다란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이를 가만히 두고 볼 일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본 헌병은 칼을 휘두르며 만세운동을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유관순 열사의 부모님이 목숨을 잃었고, 열사는 아버지의 시신을 업고 일본 헌병들에게 항의했습니다. 그러다 독립만세운동의 주모자로 체포되어 공주 검사국으로 끌려갔습니다.

 

열사는 징역 7년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 감금되었습니다. 옥중에서도 열사의 독립의지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함께 수감되었던 사람들과 함께 끊임없이 독립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헌병대의 가혹한 고문으로 1920928일에 순국하고 말았습니다. 그 때 열사의 나이는 18세였습니다.

 

 

 

동아일보 1946215일자 1, “남조선 대한국민대표민주의원 성립“ (출처: 동아일보)

 

 

 

유관순 열사가 대중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해방 이후입니다. 19462, 이승만, 김구, 김규식 등으로 구성된 대한민국대표민주의원은 3·1운동의 뜻을 이어 31일을 경축일로 지정하고 대의에 순사한 애국열사를 기념하기로 의결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성이자 학생으로서 독립운동에 투신한 유관순 열사가 주목을 받아 오늘날 우리가 유관순 열사를 대표적인 독립운동가로 알게 된 것입니다.

 

 

 

 

팔도강산 어딜 가면 감옥이 아니겠느냐.”

 

 

유관순 열사 동상 (출처: 천안시 유관순열사기념관)

 

 

 

18세 여학생이었던 유관순 열사. 그녀의 마음에 어떤 신념이 있었기에 독립운동에 투신할 수 있었던 걸까요? 열사는 공주감옥에 수감되어있을 때 징역에 대한 항소 권유를 받았는데 그 때 팔도강산 어딜 가면 감옥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열사에게 장소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강압과 공포에 굴하지 않고, 있는 그 자리에서 독립을 열망하는 국민이었습니다.

 

올해는 유관순 열사의 순국 95주기입니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천안시와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는 22일에 유관순열사추모각에서 추모제를 엽니다. 치열하게 투쟁했던 유관순 열사의 의지가 현재까지 기억되는 것은 우리 후손에게 큰 의미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와 신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오직 신념대로 행동했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은 우리 후손들의 본보기입니다.

 

출처 : http://mpva.tistory.com/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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