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사라호 태풍 참사'에 해당되는 글 1건

[9월17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1959년 추석에 강타한 사라호 태풍의 풍랑 ]

 

 

 

▶ 2002년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북, 김정일 국방위원장 정산회담

 

▶ 2000년   중경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복원끝내고 개관

 

▶ 1998년   김대거 원불교 3대 종법사 열반

 

▶ 1997년   소설가 정한숙씨 별세

 

▶ 1994년   재미 원로시인 박남수씨 별세

 

▶ 1992년   제8차 남북고위급회담(평양). 화해,불가침,교류,협력 등

 

                 3개분야 부속합의서 공식발효

 

▶ 1991년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 1989년   노태우 대통령, 서울평화상 제정 발표

 

▶ 1988년   제24회 서울올림픽 개막

 

▶ 1987년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족문학작가회의로 창립

 

▶ 1983년   미스아메리카 최초로 흑인여성 선발

 

▶ 1982년   국무회의, 인구 및 각종 산업시설 배치 등을 조정하기 위한

 

                 수도권정비계획법안의결

 

▶ 1982년   레바논 민병대, 서(西)베이루트내 팔레스타인 난민 1800명 대량학살

 

▶ 1980년   최초로 어린이가 이해력을 획득하는 과정을 체계적으로

 

                 연구한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 사망

 

▶ 1980년   독재자 소모사 피살

 

▶ 1980년   미국-중국, 4개협정 조인. 관계 전면 정상화

 

▶ 1980년   폴란드 자유노조 `연대` 출범

 

▶ 1980년   계엄보통군법회의, 내란음모혐의로 김대중에 사형선고

 

▶ 1978년   중동평화안, 캠프 데이비드 회담서 조인

 

▶ 1978년   한국-아프가니스탄, 단교

 

▶ 1971년   통혁당 조직 및 사회혼란사건 발표

 

▶ 1968년   박정희대통령, 한국-호주 정상회담

 

▶ 1965년   작곡가 안익태 사망

 

▶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정부, 인도네시아-필리핀과 단교 성명

 

▶ 1963년   111개국 유엔총회 18차회의 개막

 

▶ 1963년   부산에서 콜레라 환자 발생

 

▶ 1961년   하마슐드 유엔 사무총장 사망

 

▶ 1959년   태풍 사라호 참사 (사망-실종 924명, 수재민 98만5천명)

 

▶ 1957년   태국에 군사쿠데타 사리트장군 정권 장악

 

▶ 1953년   미국 국방성, 핵탄두 낙하예상 70개지구 발표

 

▶ 1951년   북대서양조약기구 이사회 5개국위원회 설치를 결의

 

▶ 1947년   유엔총회에 한국문제 정식 상정

 

▶ 1946년   수도경찰청 발족(청장 장택상)

 

▶ 1945년   조선프로문학동맹 결성

 

▶ 1940년   광복군 창설

 

▶ 1939년   소련군 폴란드 진주

 

▶ 1935년   필리핀, 케손 초대대통령에 당선

 

▶ 1922년   제1회 조선변호사시험 실시. 4명 합격

 

▶ 1919년   강우규 의사 피체

 

▶ 1917년   프랑스 화가 드가 사망

 

▶ 1917년   작곡가 윤이상 출생

 

▶ 1862년   미국 메릴랜드주 안티탬크리크서 남북전쟁중 최대 혈전

 

▶ 1857년   우주 비행이론 선구자 치올코프스키 출생

 

▶ 1826년   독일의 수학자 리만 출생

 

▶ 1787년   미국 헌법 제정

 

▶    14년   제2대 로마제국 황제 티베리우스 즉위

 

 

 

 

[ 사진2. 위-사라호 태풍전의 모습 , 아래-사라호 태풍이 지나가고난 후의 모습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20세기 한국사 중, 가장 큰 자연재난으로 기록되는

 1957년 사라호 참사를되짚어 보겠습니다.

 

 

 

 

[ 사진3. 사라호 태풍의 피해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있는 수재민의 모습 ]


 


- 사라호가 덮친 제주의 참혹했던 상황 - 


1959년 9월 17일 추석 새벽, 제주를 덮친 A급 태풍 사라(SARAH)호의 위력은 20세기를 통틀어 제주에 상륙한 태풍 중 가장 강력한 규모였습니다. 사라호 태풍은 그 해 14번째로 발생한 것이며, 제주를 통과한 2번째 태풍이었습니다. 사라호가 엄습한 9월 16일 밤부터 17일 아침까지 12시간 동안 제주는 공포와 죽음의 섬으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폭풍우를 동반한 사라호는 산더미 같은 파도와 해일로 도내 모든 항구와 포구를 휩쓸었고 하천을 범람시켜 마을과 거리를 물바다로 만들었으며 교통과 통신마저 두절시켜 도시와 농촌 할 것 없이 공포에 떠는 아우성만이 가득했습니다. 추석 차례를 준비하던 도민들은 하늘이 내린 대재앙 앞에 속수무책이었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사진4. 사라호 태풍 피해상황 모습 ]


 

 

 

 사라호가 할퀴고 지나간 삶의 터전은 전쟁 뒤 폐허를 방불케 했습니다. 날이 밝은 제주는 풍비박산한 초가지붕, 강풍에 날린 기왓장과 함석 간판, 길에 드러누운 전신주와 가로수, 파괴된 도로와 교량, 물에 잠긴 농토, 부서진 선박의 잔해로 온통 뒤범벅돼 아수라장과도 같았다고 합니다. 수확을 앞둔 농가는 한 해 농사의 폐작이 불가피했으며 거의 모든 도민이 직접적인 피해를 당했지요.

그러나 제주를 강타한 사라호가 남해안으로 상륙, 영·호남지방마저 휩쓸며 큰 피해를 내는 바람에 제주는 정부 차원의 특별지원도 기대하기 어려웠으며 도민들이 스스로 위기를 극복할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 사진5. 사라호 태풍에 피해 입은 영도 남항동으로 추정되는 모습 ]

 

 


- 그 해, 14번째 태풍 : 기상오보에 따른 심각한 피해 -


이 해 제14호 태풍 사라호는 1959년 9월 11일 사이판 동쪽 해상에서 발생, 5일 후인 16일 아침에는 중심기압 905헥토파스칼의 초대형 태풍으로 발달해 북북동 방향으로 올라오며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이 영향으로 9월 11일부터 16일까지 제주를 포함한 남부지방에는 연일 비가 내렸고 기상청은 15일 오후 11시를 기해 태풍주의보를, 16일 오전 10시30분에는 폭풍경보를 발효했으나 태풍경보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이는 과학적인 기상관측을 할 수 없었던 기상청(당시 중앙관상대)이 사라호가 한반도로 접근해 오면서 대형 태풍의 위력을 유지했음에도 발생 초기에 비해 세력이 다소 약화된 것에 방심한 결과였습니다.

 

 

 

[ 사진6. 사라호 태풍에 피래흫 입은 관포 어업조합의 모습 ]

 

 

 

이런 가운데 16일 오후 11시 평균 초속 33.5m(최대풍속 39.2m) 에 239㎜의 강우량을 동반한 사라호는 제주를 엄습, 단순한 태풍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던 도민들을 강타했습니다. 특히 날이 밝을 무렵인 17일 오전 5시에서 7시 사이에는 최대 풍속이 39.2m에 이를 정도로 더욱 거세져 도내 모든 기능이 마비됨에 따라 제주는 공포의 도가니에 휩싸이게 되었고요. 당시 목격자들은 소형 자동차는 강한 바람으로 운행할 수 없었고 구조를 위해 거리에 나섰던 사람들조차 비바람에 날려 손도 쓰지 못할 정도로 사라호의 위력이 대단했다고 전했습니다.


 


- 사라호가 파괴한 삶의 터전, 망연자실한 수재민들 -

 

 

[ 사진7 .사라호 태풍 수재민들을 위해 의료봉사 활동 중인 모습 ]

 

 

 

낮 12시가 넘어 사라호의 긴 꼬리가 자취를 감추면서 드러난 제주의 참상은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정도로 처참했다고 합니다. 교통과 통신이 두절되고 피해 규모가 워낙 광범위해 정확한 피해 상황을 파악하는 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실제로 제주일보(당시 濟州新報)도 18일부터 사라호 태풍과 관련해 보도를 했으나 전신망이 두절되고 피해 규모가 커 4∼5일이 지나서야 피해 규모를 기사화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 사진8. 사라호 태풍 피해 당시 수해지구를 시찰중인 이승만 대통령 ]

 

 

 

제주도 당국은 21일 사라호 태풍으로 인해 사망·실종자 11명, 부상자 127명 등 모두 140여 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당시 화폐가치로 32억5000만환의 재산피해가 났다고 밝혔습니다. 이재민은 제주시 1만7173명, 애월 7650명, 한림 6990명, 한경 3705명, 조천 3743명, 구좌 4695명, 추자 729명, 대정 6423명, 안덕 4466명, 중문 3001명, 서귀 2377명, 남원 1546명, 표선 1975명, 성산 3205명 등 모두 6만7678명에 이르렀습니다.

 

 

 

[ 사진9. 사라호 태풍에 피해를 입은 이재민 돕기 캠페인 모습 ]

 

 

 

당장 의식주 해결이 곤란해 구호해야 할 이재민수만도 3342세대에 1만2860명이었다고 하네요. 특히 제주도 서부지역을 통과해 경남지방으로 상륙한 태풍의 경로에 위치했던 서부지역이  동부지역보다 훨씬 많은 피해를 당했다고 합니다. 또 가옥 1만4271동이 전파·반파·침수되고 선박 334척이 파괴되거나 유실·침몰됐으며 공공건물 파손 131동, 교량 유실 21개소, 도로 유실 15㎞, 상수도 및 수리시설 11개소, 교실기관 289동, 사찰 및 교회 건물 102동이 피해를 당했습니다.

 

 

 

[ 사진10. 사라호 태풍 수재민에게 구호물품을 전달하는 온양문화원 ]

 

 


선박인 경우 해일에 의해 피해를 당했으며 대부분 무동력선이었고, 산지항은 여기저기 널린 선박 잔해로 폭격을 맞은 듯 처참한 광경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와 함께 농작물도 논벼 695㏊, 밭벼 2199㏊, 조 1728㏊, 콩 3794㏊, 고구마 3780㏊, 면화 495㏊ 등 모두 2만5252㏊가 침수돼 사실상 폐작됐으며 도 전체적으로 60% 가량의 농작물이 태풍에 날라갔다고 하네요. 이 같은 피해 규모는 전국적으로 발생한 인명피해 849명, 이재민 25만5000여명, 건물 8만1534동, 선박 5437척, 재산피해액 661억7054만2000환(현재 가치로는 3000여억원)에 비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었습니다.

 

 

 

  

[ 사진11. 사라호 태풍 한 지역에서 젖은 책을 말리고 있는 모습 ] 


 


30년 전에도, 30년이 지난 지금도대자연의 재앙 앞에선 속수무책일 수 밖에 없습니다.사라호 참사 당시에는 열악한 환경에서의 기상오보로 피해가 더 커진 것인데,
그래도 지금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오차가 줄어든 것이 다행입니다.하지만 역시나 방심은 금물,30년 전의 가슴 아픈 기억을 거울삼아, 앞으로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앙앞에 현명하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사진12. 자연재해 발생 시 행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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