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쌤]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7월13일>

 

 

 

 

[ 사진1. 월드컵을 위하여 특별히 지은 센테나리오 경기장 ]

 

 

 

▶ 2005년   파키스탄 열차 3중 충돌, 150여명 사망

 

▶ 2005년   노무현 대통령, 방한중인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 접견

 

▶ 2005년   공군전폭기 연쇄 추락사고

 

▶ 2002년   박정구 금호그룹회장 별세

 

▶ 2001년   민주당 장영신 의원, 대법원의 구로을 선거구 선거 무효 판결로 의원직 상실

 

▶ 2000년   미국-베트남 25년 만에 자유무역협정 체결

 

▶ 1998년   하시모토 류타로 일본 총리, 참의원선거 참패로 사퇴

 

▶ 1998년   박세리 "98제이미 파 크로거대회" 에서 우승

 

▶ 1998년   프랑스월드컵 결승전에서 프랑스가 브라질을 3:0으로 완파하고 우승

 

▶ 1997년   러시아 발레리나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사망

 

▶ 1995년   김대중, 정계복귀 선언

 

▶1989년   일본 해저화산 폭발 시작

 

▶ 1987년   과기원 유전공학센터, 세계 3번째로 항암제 인터루킨 개발

 

▶ 1985년   아프리카 기아구제를 위한 록 콘서트, 런던과 필라델피아에서 개최

 

▶ 1985년   소련 장대높이뛰기선수 부부카, 6m의 세계신기록 수립

 

▶ 1983년   영국 사형제도 부활안 부결

 

▶ 1983년   병역법안 첫 입법 예고제 실시

 

▶ 1981년   아세안 5국이 제안한 캄보디아 분쟁의 평화적 해결책 모색위한 75개국 국제회의 개막

 

▶ 1980년   보츠아나의 초대 대통령(1966-80) 카마 사망

 

▶ 1980년   중국-알바니아 경제협력 발표

 

▶ 1978년   문교부, 대학입시에 고교성적 내신제 반영 결정

 

▶ 1974년   계엄사 군법회의, 민청학련 관련자 7명 사형, 7명 무기징역, 9명 징역20년, 6명 징역 15년 선거

 

▶ 1973년   신라 금관 발견

 

▶ 1972년   김대중의원, 외신기자회견서 남북한의 유엔동시가입 제창

 

▶ 1960년   미국 민주당대회서 대통령후보로 존 F 케네디 상원의원 지명

 

▶ 1958년   수에즈운하 분규 종식 (독일-오스트리아-프랑스간)

 

▶ 1951년   12음기법의 창시자 쇤베르크 사망

 

▶ 1949년   로마 교황청, 공산주의를 믿는 가톨릭교도는 파문할 것이라고 선언

 

▶ 1946년   국립 서울대안 발표와 반대운동

 

▶ 1946년   미군정청(美軍政廳), 국립대학교 신설안 발표

 

▶ 1934년   나이지리아의 소설가 소잉카 출생 - 1986년 노벨 문학상 수상

 

▶ 1930년   조선 각지에 대수해

 

▶ 1930년   제1회 월드컵이 우루과이에서 개막

 

▶ 1930년   월드컵 1호골 (프랑스 축구선수 루시엥 로랑, 제1회 우루과이월드컵에서 성공)

 

▶ 1929년   김좌진, 한족자치연합회 조직

 

▶ 1921년   1908년 최초로 컬러 사진 감광판을 만든 프랑스의 물리학자 리프만 사망

 

▶ 1920년   조선체육회 창립

 

▶ 1919년   상해에서 임정적십자회 조직

 

▶ 1918년   영화배우 김승호 출생

 

▶ 1913년   미국의 제38대 대통령(1974~77) R.포드 출생

 

▶ 1911년   제3차 영국-일본 동맹조약 조인

 

▶ 1909년   라오스의 초대 대통령 수파누봉 출생

 

▶ 1908년   시인 청마 유치환 출생

 

▶ 1904년   원세성-송수만-이기 등 보안회 조직 배일민중운동 전개

 

▶ 1886년   미국 종교가 플래나간 출생

 

▶ 1882년   소련 트케르니 부근서 열차탈선사고 150명 사망

 

▶ 1808년   프랑스의 제3공화정 2대 대통령 마크 마옹 출생

 

▶ 1793년   프랑스 혁명가 마라 사망

 

▶ 1772년   제임스 쿡, 2차 탐험 출항

 

▶   646년   대당서역기 완성

 

 

 

 

[ 사진2.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우루과이와 아르헨티나가 초대 챔피언 자리를 놓고 격돌 ]

 

 

 

오늘의 역사 이시간에는 우루과이에서

제1회 월드컵대회에 대해서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 사진3.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우루과이의 외팔이 공격수 카스트로가 승부에 쐐기를 박은 공을 성공 ]

 

 

 

축구를 통해 인류 평화를 도모하자는 줄 리메 국제축구연맹 회장의 꿈이

1928년 5월 26일 연맹 총회에서 월드컵 탄생으로 이어졌다.

총회는 1930년 제1회 대회를 가진 뒤 4년마다 한번 올림픽이 쉬는 해에 열기로 결정했다.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 헝가리, 스웨덴이 첫 개최를 희망했다.

하지만 이듬해 총회에서 우루과이가 첫 개최국으로 선정됐다.

우루과이는 1924년과 1928년 올림픽에서 축구 금메달을 딴 축구 강국이었다

 

 

 

 

.[ 사진4. 제1회 월드컵 결승전, 4:2로 아르헨티나에 승리를 거둔 우루과이 선수들의 기뻐하는 모습 ]

 

 

우루과이 월드컵은 1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30년 7월 13일 몬테비데오에서 막을 올렸다.

주경기장이 미처 완공되지 않아 보조 경기장에서 개막식을 가졌고,

개막 5일 뒤에야 주경기장을 사용할 수 있었다. 원래 첫 경기는 개최국 차지였으나,

프랑스 혁명기념일 을 맞아 프랑스와 멕시코전을 개막 경기로 열었다.
주최국 우루과이는 강호들을 연달아 격파한 뒤 결승에서 아르헨티나와 만났다.

 

 

 

 

[ 사진5. 제1회 월드컵 결승전, 우승을 차지한 우루과이 선수단 ]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 밀고 밀리는 공방전을 펼친 끝에 4-2로 승리,

결국 줄 리메 FIFA 회장이 높이 30cm,무게 4 kg인 금으로 만든 `줄 리메컵`을

우루과이팀 주장 호세 나사지에게 수여했다. 이로써 우루과이가 `줄 리메컵`의 첫 주인이 됐다.

열광과 환희가 우루과이 전역을 휩쓸었고 이튿날은 공휴일로 선포됐다.

우루과이 월드컵엔 불참국이 있었지만, 이제 월드컵 불참이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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