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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쌤]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7월28일>

 

 

 

 

[ 사진1. 제1차 세계대전 ]

 

 

 

 2010년   파키스탄 최악의 항공 참사… 악천후 속 여객기 추락, 탑승자 152명 전원 사망

 

▶ 2004년   현대자동차의 누적 수출대수 1000만대 돌파

 

▶ 2004년   농촌운동가이자 용신봉사상 제1회 수상자인 이한옥 여사 별세

 

▶ 2003년   미국 사이클선수 암스트롱 ‘투르 드 프랑스’서 5연패 달성

 

▶ 1992년   중요무형문화재 49호 송파산대놀이 예능보유자 문육지씨 별세

 

▶ 1990년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에 취임

 

▶ 1989년   하세미 라프산자니, 이란 대통령에 선출

 

▶ 1989년   11호태풍 쥬디, 경남 부산지역 강타 20명 사망 실종

 

▶ 1985년   가르시아 페루 대통령에 취임, 40년 만에 평화적 정권교체

 

▶ 1984년   제23회 LA올림픽

 

▶ 1983년   북한 청진항 중국에 개방

 

▶ 1981년   한국-인도네시아 해상화물 분담에 관한 해운협정 체결

 

▶ 1981년   정부, 교육세 신설

 

▶ 1980년   영국-사우디 외교관계 재개 합의

 

▶ 1980년   첫 여성기술사(박광자, 정영선) 탄생

 

▶ 1979년   한국 레슬링선수단에 몽고서 첫 비자

 

▶ 1978년   경북도교위 가짜교사 자격증사건 관련 74명 구속

 

▶ 1976년   중국 당산 지역 진도8.2 지진 24만여명 사망

 

▶ 1971년   사법파동 시작     

 

▶ 1968년   핵분열 발견으로 노벨화학상 수상한 독일 화학자 오토 한 사망

 

▶ 1961년   혁명재판 개정

 

▶ 1957년   멕시코시와 아카폴코 부근에 지진

 

▶ 1953년   제1차 판문점 정전회담 개최

 

▶ 1946년   북조선노동당 결성(위원장 김일성)

 

▶ 1945년   미국 B25폭격기,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79층에 충돌. 14명 사망

 

▶ 1945년   미군 B29기 일본 중소도시 폭격 격화

 

▶ 1943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당 해체

 

▶ 1937년   화북주둔 일본군, 총공세를 개시 북경 점령

 

▶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개막

 

▶ 1926년   미국-파나마동맹조약 성립

 

▶ 1914년   1차대전 시작

 

▶ 1902년   철학자 칼 포퍼 출생

 

▶ 1902년   미국, 프랑스 파나마운하회사로부터 파나마에 대한 권리를 4천만불에 매수

 

▶ 1887년   프랑스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마르셀 뒤샹 출생

 

▶ 1858년   대서양에 해저전선 매설작업 시작

 

▶ 1821년   페루,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1804년   독일 철학자 루드비히 포이어바흐 출생

 

▶ 1794년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화성(현재의 수원) 기공

 

▶ 1794년   로베스피에르 처형 

 

▶ 1750년   바흐 사망

 

▶ 1741년   이탈리아 작곡가 비발디 사망

 

 

 

 

[ 사진2. 제1차 세계대전 ]

 

 

 

오늘의역사 이 시간에는

1914년 세기의 전쟁으로 알려진 제1차대전에

대해서 포스팅 해보려 합니다.

 

 

 

[ 사진3. 제1차 세계대전 ]

 

 

 

사라에보사건을 시작으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Franz Ferdinand)와 그의 부인인 조피(Sophie Chotek)가 세르비아계의 학생인 가브릴로 프린치프(Gavrilo Princip, 1894~1918)에게 암살된 사건이다. 이 사건을 빌미로 1914년 7월 28일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다.

 

 

 

[ 사진4. 제1차 세계대전 ]

 

 

 

사건의 배경

1389년 코소보 전투에서 패배한 뒤로 보스니아를 비롯한 발칸반도의 국가들은 오랜 기간 오스만제국의 지배를 받아왔다. 그러나 19세기 이후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오스만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독립운동이 고양되었다. 특히 슬라브인들에게는 오스만제국을 유럽에서 몰아내고 남슬라브 단일국가를 건설하자는 범슬라브주의가 확산되었고, 19세기 초반 두 차례에 걸친 봉기로 오스만제국에게서 자치권을 획득했던 세르비아가 그 중심에 있었다.

 

 

 

[ 사진5. 제1차 세계대전 ]

 

 

 

러시아도 발칸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러한 범슬라브주의를 지원했다. 1877년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한 오스만제국은 산스테파노조약으로 이스탄불을 제외한 모든 유럽의 영토를 잃었다. 몬테네그로, 세르비아, 루마니아가 독립했고 불가리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가 자치권을 얻었다.

 

 

 

[ 사진6. 제1차 세계대전 ]

 

 

 

그러나 열강들의 개입으로 발칸반도의 정세는 더욱 복잡해졌다. 1866년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패하면서 제국의 서부를 잃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발칸반도로의 동진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었고, 지중해 지역과 중앙아시아 등에서 러시아와 대립하던 영국ㆍ프랑스ㆍ독일을 끌어들여 러시아를 견제하려 했다. 마침내 유럽의 열강들은 1878년 베를린회의에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산스테파노 조약을 수정했다. 그 결과 불가리아 영토의 상당 부분이 다시 오스만제국으로 반환되었으며, 보스니아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 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보스니아를 동진정책의 전초기지로 활용하려고 했으며, 1908년에는 보스니아를 완전히 병합했다.

 

 

 

[ 사진7. 제1차 세계대전 ]

 

 

 

이러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정책은 보스니아의 세르비아계 주민들의 민족주의를 자극했으며, 이 지역 정세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젊은 보스니아(Mlada Bosna)’나 ‘검은 손(Crna ruka)’ 등 범슬라브주의에 기초한 비밀결사가 1910년 이후에 잇달아 구성되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 사진8. 제1차 세계대전 ]

 

 

 

사건의 경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인 프란츠 요제프 1세(Franz Joseph)의 조카이자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은 아내 조피와 함께 1914년 6월 28일에 사라예보를 방문했다. 그 날은 그들의 결혼 14주년 기념일이었다. 그러나 세르비아인들에게 점령국 황태자 부부의 방문은 애초부터 반가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날은 세르비아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성 비투스 축일(Vidovdan)이자, 세르비아왕국이 오스만제국에 패한 코소보 전투가 벌어진 치욕의 날이라 세르비아인들의 반감은 더욱 커진 상태였다. 이에 세르비아계 민족주의자들이 결성한 비밀결사인 ‘검은 손’은 이들에 대한 암살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겼다.

 

 

 

[ 사진9. 제1차 세계대전 ]

 

 

 

열차를 타고 보스니아에 도착한 대공 부부는 오전 10시를 조금 지난 시각에 일행과 함께 4대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처음에는 무하메드 메드메흐바시치(Muhamed Mehmedbašić, 1886〜1943)가 총으로 대공 부부를 저격하기로 되어 있었으나 계획이 실패했다. 그러자 네델리코 차브리노비치(Nedeljko Čabrinović, 1895〜1916)가 차량 행렬에 수류탄을 던졌다. 하지만 대공 부부가 탄 차가 지나간 다음에 폭탄이 터지는 바람에 대공 부부는 무사하고 뒤 따르던 차에 타고 있던 12명만 부상을 입었다. 암살에 실패한 차브리노비치는 독을 마시고 목숨을 끊으려 했으나 경찰들에게 곧바로 체포되었다.

 

 

 

[ 사진10. 제1차 세계대전 ]

 

 

 

대공의 행렬은 속도를 높여 시 청사로 갔다. 시청에 도착한 대공 부부는 일정을 바꿔 부상을 입은 사람들을 위문하러 병원으로 갔다. 그러나 도중에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총격을 받아 살해되었다. 임신 중이던 조피는 복부에 총을 맞았고, 페르디난트 대공은 머리에 총을 맞았다. 대공 부부를 살해한 프린치프는 독을 마시고 총으로 자살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체포되었다.

 

 

 

[ 사진11. 제1차 세계대전 ]

 

 

 

사건의 영향

대공 부부를 살해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세르비아계의 학생으로 비밀결사인 '검은 손’의 일원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사건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서 암살에 사용한 폭약과 권총 등이 세르비아 정부에게서 지급되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 사진12. 제1차 세계대전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세르비아 정부가 이 사건에 관련되었다며 7월 23일에 세르비아에 최후의 통첩을 보냈다. 그것은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반대하는 모든 단체를 해산하고, 그 단체들과 관련된 관리들을 해임하며, 암살과 관련된 모든 자들을 처벌하고,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관리가 세르비아에서 이를 조사할 수 있게 허용할 것 등의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통보한 48시간 이내에 세르비아가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놓지 않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7월 28일에 세르비아에 전쟁을 선포했다. 러시아가 세르비아를 지원하기 위해 7월 29일 총동원령을 내리자, 1879년 오스트리아와 군사동맹을 맺은 독일이 러시아에 총동원령 해제를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리고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면서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이 본격화하였다.

 

 

 

[ 사진13. 제1차 세계대전 ]

 

 

 

한편, 대공 부부의 암살에 가담한 네델리코 차브리노비치, 다닐로 일리치(Danilo Ilić), 미하일로 요바노비치(Mihaijlo Jovanović) 등은 모두 징역 16년에서 교수형에 이르는 형을 받았다. 대공 부부를 직접 저격해 살해한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20세가 넘지 않은 미성년이어서 교수형을 면하고 징역 20년의 형을 받았으나, 1918년 감옥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했다.

 

 

[ 사진14. 제1차 세계대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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