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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3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전태일 분신사건 ]

 

 

 

 

▶ 2010년   미얀마 아웅산 수치 여사 가택연금 해제

 

▶ 2009년   국민연금, 영국 HSBC 건물 구입

 

▶ 2008년   종부세 '세대별 합산부과' 위헌

 

▶ 2005년   제1회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서 삼성 라이온즈 준우승(지바롯데 우승)

 

▶ 2004년   경복궁 경회루 40여년 만에 개방

 

▶ 2001년   '수지 김 사건', 남편의 자작극으로 밝혀져 파문

 

▶ 2001년   인기 탤런트 황수정,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구속

 

▶ 1998년   국제통화기금, 브라질에 415억달러의 구제금융지원을 승인

 

▶ 1997년   이회창 신한국당 총재와 조순 민주당 총재, 통합당의 대통령후보를 이총재로, 당총재를 조총재로 공식발표

 

▶ 1995년   에토 다카미 총무청장관 사임. `일본은 식민통치기간중 한국에 좋은 일을 했다`고 망언

 

▶ 1995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 한국방문

 

▶ 1993년   파루크 레가리, 파키스탄 대통령으로 선출

 

▶ 1992년   육군사조직 `알자회` 파문

 

▶ 1985년   콜롬비아 루이스화산 폭발로 2만5000여명 사망

 

▶ 1984년   중국 산서성 당서기 선거, 중국사상 처음 비밀투표 실시

 

▶ 1982년   레이건, 대(對)소련금수조치 해제발표. 새 동서무역정책 선언

 

▶ 1981년   미국 우주왕복선 콜롬비아호 2차 발사

 

▶ 1980년   건설부, 동서고속도로(171.5km) 건설계획 확정

 

▶ 1980년   제15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대회 개최

 

▶ 1974년   아라파트 PLO의장 유엔총회서 첫 연설

 

▶ 1974년   유엔총회, 남아공화국 축출안 가결

 

▶ 1971년   미국 유인 화성위성 마리너9호 화성궤도 진입

 

▶ 1970년   전태일 분신사건

 

▶ 1966년   일본, 밀월여객기 추락. 신혼부부 11쌍 등 51명 몰살

 

▶ 1962년   한국-독일 차관협정 조인

 

▶ 1961년   쿠알라룸프르에서 콜롬보계획 각료회의 개막

 

▶ 1960년   3.15부정선거로 기소된 장경근 전 내무장관이 입원중인 서울대병원에서 일본으로 탈주

 

▶ 1956년   미국, 공공버스 인종차별 위헌 판결

 

▶ 1946년   영등포역 구내서 열차충돌 41명 사망

 

▶ 1945년   군정청에 국방사령부 설치, 모병실시

 

▶ 1945년   남북한, 바터제 교역 채택

 

▶ 1940년   소형군용차 지프 개발

 

▶ 1933년   독일 총선거에서 나치스 대승

 

▶ 1921년   안창남, 한국 비행사 최초로 저공 비행에 성공

 

▶ 1921년   미국-영국-프랑스-일본, 태평양방면 영토권보장조약 조인

 

▶ 1918년   여준 등 중광단인사 39명 만주에서 독립선언서 발표

 

▶ 1918년   오스트리아 공화국 선포

 

▶ 1908년   나비연구가 석주명 출생

 

▶ 1907년   프랑스 자동차 제작자 폴 코르뉘, 헬리콥터를 설계, 최초 시험비행에 성공

 

▶ 1903년   프랑스의 인상주의 화가 피사로 사망

 

▶ 1893년   비타민 K의 연구로 유명한 미국 생화학자 에드워드 도이지 출생

 

▶ 1887년   주미공사 박정양 일행 향미(向美)

 

▶ 1868년   이탈리아 작곡가 로시니 사망

 

▶ 1851년   영국-프랑스간 최초의 통신케이블 설치

 

▶ 1850년   영국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출생

 

▶ 1460년   포르투갈 항해왕자 엔리케 사망

 

▶   354년   기독교 사상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출생   

 

 

 

 

[ 사진2. 인간다움을 외치며 쓰러졌던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맨 오른쪽) 한미사 동료들과 함께 ]

 

 

 

전태일 - " 어느 청년 재단사의 꿈 '

 

1970년 11월 13일 오후 2시경, 서울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1948~1970)이

자기 몸에 석유를 붓고 불을 붙여 자살을 기도하였다. 그는 뜨거운 불길 속에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고 외쳤다. 다음날 그는 자기가 못다 이룬 일을 꼭 이루어 달라고 어머니와

동료들에게 다짐을 받은 후 명동 성모병원에서 숨을 거두었다.

 

 

 

[ 사진3. 근로감독관에게 쓴 전태일의 편지 (전태일의 일기 중에서) ]

 

 

 

전태일은 1948년 8얼26일 대구에서 태어나, 1966년 그의 나이 17세에 평화시장 뒷골목

동일사에 취직하게 되었다. 1967년 2월 24일에 그는 마침내 바라던 재단사가 되었지만

하루 15시간의 중노동 속에서 폐병으로 각혈한 미싱사 처녀 노동자가 해고 당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1969년에 동료 재단사들을 설득하여 평화시장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근로기준법」을 지키게 하기 위해 '바보회'를 결성하고, 그 회원을 통하여 노동실태 설문

조사를 하고 이를 근거로 근로기준법상 감독권 행사를 요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정부로

부터 아무런 반응도 얻지 못했다. '바보회' 활동을 의욕적으로 전개해 조직확장에 열을

올리자 업주들은 그를 위험분자로 낙인찍어 해고하였고, '바보회'는 와해상태에 빠졌다.

 

 

 

[ 사진4. 전태일 분신자살 보도기사 ]

 

 

 

1970년 9월, 평화시장에 돌아온 전태일은 '바보회'를 재정비하여 '삼동친목회'로 조직을

일신하고, 그 첫 사업으로 평화시장 일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재조사해 10월 6일에

노동청장 앞으로 '평화시장 피복제품 종업원 근로개선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 진정서는 사회에 엄청난 파문을 불러일으켜 10월 7일에 각 석간신문에 일제히 보도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요구조건은 차일피일 미루어 졌고,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삼동회 회원들은

10월 20일에 노동청 국정감사 기간에 노동청 앞에서 시위를 벌일 계획을 세웠으나 요구조건을

들어주겠다는 근로감독관의 이야기에 기만 당해 계획을 취소하고 말았다. 그러나 국정감사가

지나자 저들은 '할대로 해봐라.'는 태도였고, 이에 분노한 삼동회 회원들이 10월24일 오후 1시

평화시장 국민은행 앞길에서 시위를 계획하였으나 삼엄한 경비로 인해 실패 하였다.

다시 11월 7일까지 문제를 해결 하겠다던 약속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자 11월 13일에

'근로기준법화영식'을 결의하였다. 화영식이 삼엄한 경비와 경찰들의 몽둥이에 밀리던 중,

한 되가량의 석유를 온몸에 끼얹고 불을 붙인 전태일이 국민은행 앞길로 달려 나갔던 것이다.

 

 

 

[ 사진5. 전태일 분신 사망 후 운구와 오열하는 참배객의 모습 ]

 

 

 

전태일의 죽음은 고도성장과 근대화의 꿈에 잠겨있던 한국 사회에 크나큰 충격과 죄절감을

안겨 주었다. 특히, 노동행정 당국은 물론 노도계와 학원 및 종교계 등 사회 각 방면에 끼친

충격은 지대한 것이었다. 11월 16일에 서울대학교 법과대 학생들의 가칭 '민권수호 학생연맹

준비위원회'가 발족 된 데 이어, 서울대 상대와 문리대, 이화여대, 고려대, 연세대 등의

학생들이 노동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단식농성, 추도식과 시위를 벌였다. 11월 18일에

한국노총은 창동교회에서 전태일의 장례식을 거행하였으며, 종교계에서도 추도예배를 가졌다.

 이처럼 전태일의 죽음은 노동,정치,사회,종교,언론 등 사회 전 부분에 걸쳐 커다란 충격과 파장을

일으키면서 많은 사람들의 뇌리 속에 깊이 각인 되었으며, 70년대 노동운동의 기폭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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