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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3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이승복 동상 ]

 

 

 

 

▶ 2005년   윌리엄 렌퀴스트(81) 미국 제16대 대법원장 사망

 

▶ 2004년   원로 서양화가 홍종명씨 별세

 

▶ 2002년   탈북자 15명, 베이징 내 독일 학교 및 외교관 숙소에 진입해 망명 요청

 

▶ 2002년   법원,이승복(君) '나는 공상당이 싫어요'

                조선일보 기사는 오보가 아닌 사실로 판결

 

▶ 2001년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 건의안 국회통과

 

▶ 2000년   이형택 선수, US오픈테니스 16강에 올라

 

▶ 1998년   태고종 종정 보성 스님 열반

 

▶ 1998년   5대그룹, 8개업종 구조조정안에 최종합의

 

▶ 1997년   베트남기 프놈펜에서 추락, 한국인 21명 포함 탑승객 65명 사망

 

▶ 1996년   박재홍 선수, 국내 프로야구 사상 최초의 '30(홈런) - 30(도루)' 달성

 

▶ 1995년   원로배우 석금성 여사 별세

 

▶ 1993년   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유명우, 현역에서 은퇴

 

▶ 1988년   북한 및 공산권자료 공개

 

▶ 1980년   이집트, 이스라엘 평화협상 재개 합의

 

▶ 1978년   신현확 보사부장관 한국각료로서 첫 소련 입국, WHO회의 참석

 

▶ 1978년   요한 바오로1세 교황에 즉위

 

▶ 1977년   왕정치 756홈런으로 세계신기록 수립

 

▶ 1976년   미국 바이킹2호 화성에 연착륙

 

▶ 1974년   원신희, 아시안게임 역도 3관왕

 

▶ 1971년   카타르, 영국으로부터 독립

 

▶ 1971년   미국-영국-프랑스-소련, 베를린 협정 조인

 

▶ 1969년   호지명 베트남 초대 대통령 사망

 

▶ 1967년   월남 대통령선거에서 웬반티우 당선

 

▶ 1963년   자민당 창당 (위원장 김준연, 송요찬, 김재춘 등 참여)

 

▶ 1959년   서울 당인리 화력발전소 발전 개시

 

▶ 1954년   중공군, 금문-마조도에 포격

 

▶ 1952년   미국 B29 폭격기 편대 청진(淸津)발전소 폭격

 

▶ 1952년   뇌염으로 학교, 극장 등 폐쇄

 

▶ 1949년   엘살바도르 한국을 정식 승인

 

▶ 1948년   미군정, 경찰권 이양

 

▶ 1947년   한국방송 호출부호 `HL`로 할당

 

▶ 1947년   보선(普選)법 공포

 

▶ 1943년   연합군, 이탈리아에 상륙

 

▶ 1943년   이탈리아, 항복문서 조인(8일 연합국 발표)

 

▶ 1941년   연극배우 추송웅 출생

 

▶ 1941년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서 독가스 처형 시작

 

▶ 1940년   미국, 영국 방위협정 조인

 

▶ 1939년   호주-이집트, 대(對)독일 선전포고

 

▶ 1939년   영국-프랑스, 獨(독)에 선전포고...2차대전 발발 

 

▶ 1928년   플레밍, 페니실린 발견

 

▶ 1923년   박열, 일왕 암살음모로 피검

 

▶ 1914년   한말의 개화사상가 유길준 사망

 

▶ 1896년   호구조사규칙 반포

 

▶ 1883년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사망

 

▶ 1877년   프랑스 제3공화국의 창시자이자 초대 대통령인 티에르 사망

 

▶ 1875년   오스트리아의 자동차 공학자 포르셰 출생

 

▶ 1868년   일본, 강호(江戶)를 동경(東京)으로 개칭

 

▶ 1859년   프랑스 정치가 장 조레스 출생

 

▶ 1856년   미국 근대 건축의 선구자인 설리번 출생

 

▶ 1932년   현대신문의 효시「The Sun 」미국에서 창간

 

▶ 1783년   영국, 파리조약으로 미국 독립을 승인

 

▶ 1658년   영국 정치가 크롬웰 사망

 

▶   931년   일본의 59대 천황(887-897) 우다 사망

 

 

 

 

[ 사진2. 이승복 사건 조선일보 기사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했던

이승복 사건과 이승복 사건 조작설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3. 이승복 초상화 ]

 

 

 

 1969년 이후 이승복군 이야기는 초등학교 도덕교과서에 실려,

남북대치상황에서 반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제4차 교육과정(1984년)까지는 초등학교 5학년 교과서에서

당시 무장공비의 만행이 상세히 기술되는 등 큰 비중을

차지했었습니다. 그러나 1988년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선언)'을 발표한 이후 인 제5차 교육과정(1990년)에서

간략하게 설명하는 방식으로 바뀌더니, '조작설'이 유포된 지

 5년 후인 1997년부터 교과서에서 자취를 감췄습니다.

 

 

 

[ 그림1. 이승복 가족의 단란했던 모습 ]

 

 

 

- 이승복 사건 -

 

이 사건은 1968년10월30일 ~ 11월2일 3차에 걸쳐

강원도 울진·삼척 지구에 침투했던 북한의 남파공작원(무장공비) 

5명이 도주중 12월 9일 강원도 평창군의 한 시골 오지마을에

숨어 들어가 일가족 4명을 집단 살해한 사건이다.

 

 

[ 그림2. 이승복 가족에 무장공비들의 만행 모습]

 

 

 

피해자는 어머니 주대하(당시 33세), 차남 이승복(당시 10세),

3남 이승수(당시 7세), 4녀 이승녀(당시 4세) 등 4명이었으며,

아버지 이석우(당시 35세)씨와 장남 이승권(당시15세)군은 중상을 입었다.

 

 

[ 사진4. 이승복을 무장공비가 살해 한 시신 ]

 

 

 

당시 조선일보는 1968년 12월11일 사회면 머릿기사로

<공비, 일가 4명을 참살/“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제하의 기사에서 이 사건의 전모를 소개하면서 남파 공작원에게

살해당한 승복 군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며 유일하게

항거하다가 죽임을 당했다”고 보도했다.

 

 

 

 

[ 사진5. 이승복 일가를 무장공비가 살해한 시신 ]

 

 

 

당시 조선일보의 관련 대목을 인용해보면,

“장남 승권 군에 의하면 강냉이를 먹은 공비들은 가족 5명을

안방에 몰아넣은 다음 북괴의 선전을 했다.

열살 난 2남 승복 어린이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얼굴을 찡그리자 그 중 1명이 승복 군을 끌고 밖으로 나갔으며

계속해서 어머니를 비롯한 나머지 세 자녀를 모두 끌고 나가

10여m 떨어진 퇴비더미까지 갔다. 공비들은 자식들이 보는 앞에서

벽돌만한 돌멩이로 어머니 주 여인의 머리를 여러 차례 내리쳐

현장에서 숨지게 했으며 승복 어린이에게는

‘입버릇을 고쳐 주겠다’면서 양손가락을 입속에 넣어 찢은

다음 돌로 내리쳐 죽였다”

 

 

 

[ 사진6. 이승복 일가를 무장공비가 살해한 시신 ]

 

 

 

- 대법원 "이승복 기사는 진실" 판결 -

 

지난 92년 ‘조작설’이 처음 제기된 이후 우리 사회 일각에

이승복은 조선일보 또는 군사정권이 만들어낸 허구의 인물”이라는

그릇된 인식이 퍼지고, 이승복군 동상이 철거되거나 이승복군의

유족들이 모욕을 당하는 등 엄청난 폐해를 낳았다.

 

 

 

[ 사진7. 이승복 생가 ]

 

 

 

서울중앙지법 형사9부(재판장 강형주, 주심판사 곽윤경)는

28일 조선일보 1968년 12월 11일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라는 제목의 기사를 ‘오보전시회’에 포함시켜

“거짓 보도·소설”이라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된

언론개혁시민연대 전 사무총장 김주언씨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조선일보의

‘이승복 보도’에 대해 “허구, 조작, 작문기사”라고 허위 보도한

혐의로 기소된 미디어오늘 전 차장 김종배(38)씨에 대해서는

허위 내용을 보도한 것은 사실이나 기사 작성 당시에는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 사진8. 이승복의 생애 ]

 

 

 

검찰은 “김종배씨가 92년 이후 최근까지 무려 12년간

허위 내용을 반복 주장한 것에 대해 허위임을 인식하지

못했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면서 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건 당시

남한이 좋으냐, 북한이 좋으냐” 공비의 물음

이승복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말해

일가족이 살해됐다는 승복군의 형 학관씨의 진술

당시 이를 전해 들은 이웃주민 최순옥, 서옥자,최순녀

유경상씨 등의 일치된 증언, 시신 중 유일하게 입가가

찢어진 이승복군의 시신 사진 등을 종합할 때 이승복군이

공비들에게 공산당이 싫다는 취지의 말을 한 것은 사실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 사진9. 이승복 초상화와 국민훈장 ]

 

 

 

재판부는 이어 “ 조선일보가 보관해온

 살해 현장을 찍은 사진 15장의 원판 필름과 사진의 내용

기사를 송고한 대관령 목장(고령지농업시험장)과 전화가

존재하는 점 당시 조선일보 기자들의 구체적인 증언 등을

종합하면 1968년 12월 10일 조선일보 강인원·노형옥 기자가

사건 현장에 직접 가서 취재·보도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 사진10. 이승복 사건일지와 소송일지 ]

 

 

 

재판부는 “따라서 피고인들이 주장해온 ‘허구, 조작, 작문,

오보, 소설, 조선일보 기자들은 현장에 없었다’는 등의

주장은 허위사실의 적시에 해당한다”고 결론지었다.

 검찰은 1999년 7월 두 사람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기소했고,

서울지법은 2002년 9월 두 사람의 혐의를 모두 유죄

인정해 김주언씨에게 징역 6월, 김종배씨<전미디어오늘>에게

징역 10월을 각각 선고했다 

 

 

 

[ 사진11. 이승복 동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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