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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9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용인 오대양집단자살 사건 공장 ]

 

 

 

[ 영상1. (주)오대양과 (주)세모 유병언과의 관계 ] 

 

 

 

 

 

 

▶ 2011년   신라 유적 발굴에 헌신...정재훈 前 문화재관리국장 별세

 

▶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미국 강타

 

▶ 2003년   주5일 근무제 개정안 국회 통과, 주 44시간에서 40시간 근무로 축소

 

▶ 2002년   헌법재판소, 부부자산 소득 합산과세 위헌결정

 

▶ 2000년   가수 서태지 4년 7개월 만에 미국에서 귀국

 

▶ 2000년   미국의 한 부부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 딸의 질병치료에 쓰일 동생을

 

                  출산하자 윤리논쟁 가열

 

▶ 1999년   북한 정성옥, 세계육상여자마라톤에서 금메달 획득 (남북한 사상 첫 메달)

 

▶ 1998년   조인주 WBC 슈퍼플라이급 세계챔피언 획득

 

▶ 1997년   제1회 부산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

 

▶ 1995년   중앙고속도로 1단계 구간 개통

 

▶ 1994년   삼성, 세계최초로 256메가 D램 개발을 발표

 

▶ 1993년   싱가포르 대통령에 옹텅칭 인민행동 당수 당선

 

▶ 1989년   사자가 호랑이를 부모로 한 '라이거' 국내 최초로 탄생

 

▶ 1987년   오대양 집단 변사사건

 

                (여사장 등 32명, 용인공장서 동반자살 시체로 발견)

 

▶ 1982년   잉그리드 버그만 사망

 

▶ 1972년   한국적십자사 대표단 제1차 남북적십자회담차 평양 도착

 

▶ 1963년   드골 프랑스 대통령 인도차이나 중립화 구상을 발표

 

▶ 1961년   한국노총 결성

 

▶ 1959년   인도. 중국 국경분쟁 격화

 

▶ 1958년   가수 마이클 잭슨 출생

 

▶ 1958년   인민공사 설립

 

▶ 1950년   마잘리 요르단 수상 피살

 

▶ 1949년   룩셈부르그 대한민국 정식승인

 

▶ 1949년   소련 최초의 원자폭탄 실험 성공

 

▶ 1945년   인민신문 창간

 

▶ 1941년   일제 금속류회수령 공포

 

▶ 1931년   조선어학회, 이날을 한글날로 변경

 

▶ 1929년   독일 비행선 그라프제펠란호 세계일주 성공

 

▶ 1920년   미국의 알토 색소폰 연주자 찰리 파커 출생

 

▶ 1916년   미국, 필리핀의 자치승인

 

▶ 1915년   영화배우 잉그리드 베리만 출생

 

▶ 1910년   순종, 일본의 압력으로 양국(讓國)의 칙유문 발표

 

▶ 1897년   제1회 시오니스트 대회 개최

 

▶ 1881년   이재선 역모사건

 

▶ 1879년   시인 만해 한용운 출생

 

▶ 1871년   프랑스 제3공화정의 마지막 대통령(1932~40) 르브룅 출생

 

▶ 1842년   청, 난징조약 체결로 5개항 개방하고 홍콩을 영국에 할양

 

▶ 1842년   영국-청, 난징(南京)조약 체결

 

▶ 1632년   영국 철학자 존 로크 출생

 

▶ 1231년   몽고의 살례타이(撒禮塔), 고려에 1차 침입

 

 

 

 

 

 

[ 사진2. (주)오대양과 공영정밀은 직원이 떠나고 텅 비어있음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87년 8월29일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준 오대양집단자살 사건에

대해서 포스팅 해 보겠습니다.

 

 

 

 

 

[ 사진3. (주)오대양과 공영정밀은 직원이 떠나고 텅 비어있음 ]

 

 

 

오대양집단자살 사건은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있는 (주)오대양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오대양 대표 박순자(朴順子)와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이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 사진4. 박순자씨와 장남 이영호씨 등이 84년 모 방송국에서 금상 수상 ]

 

 

 

수사 결과 오대양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는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교(邪敎) 교주로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고 있던 중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잠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 사진5. 박순자씨가 운영하던 대전 학사의 야간점호 광경 ]

 

 


그러다가 1991년 7월 오대양 종교집단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사건의

의문점들이 얼마간 밝혀졌다. 자수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경찰이 추정하고 있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와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 3명이 자살사건 전에이미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당한 뒤 암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사건이 전면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이 사건이 경찰의 발표대로 집단자살극인가, 아니면

외부인이 개입된 집단 타살극인가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을 뿐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 사진6. 오대양합숙소에 기숙하는 어린이들 ]

 

 

 

당시 부검 의사는 3구의 시체는 자살이 분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주 박순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살(絞殺)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하며,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행해진 집단 타살극이라고 주장하였다.

 1987년 8월29일 토요일,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경기도 용인군 남서면

북리 (주) 오대양 용인공장에서남녀 시체 32구가

발견되어 전국민을 경악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 사진7. 32명이 집단변사체로 발견 된 오대양 용인공장 현장]

 

 

 

오대양 용인공장의 공장장 이강수는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해 있었고 오대양의 사장이자 세칭

오대양교의 교주로 알려진 박신자를 비롯하여 31구의

 시체는 식당겸 다용도실 천장 바닥에서 목을 맨 채 누워

있거나 2, 3구씩 포개진 시체로 죽어 있었다.
이들을 목맨 것은 바지나 스커트를 가늘고 길게 자른 천이었다.

경찰은 8월29일 오후부터 수원지검의 지휘를 받으며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현장감식.

감식반을 비롯해 강력계 형사들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지문을 떠 신원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32구

시체의 신원이 전부 확인되었다.

 

 

 

 

 

[ 사진8. 경찰이 오대양 용인공장 식당천장을 뜯고 변사체를 내림 ]

 

 

 

치안본부에서 유능한 감식반이 파견되었고
경기도경, 용인경찰서의 베테랑 형사들이 대대적으로

투입되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억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폭우로 변해현장 주변을 더욱 음산하게

 했다. 마치 세상에 종말이 온 듯한 기분이었다. 매스컴은

취재 경쟁을 벌이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오대양의

베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세칭 (주)오대양 사장 박신자.
그녀는 당시 48세로 많은 사채를 끌어들여 공장을

설립하고 종말론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

 

 

 

 

 

[ 사진9. 오대양 용인공장 작업장 식당으로 통하는 입구 ]

 

 


'세상이 말세가 되었는데 오대양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전세계 오대양은 내가 주관한다'

 '오대양을 떠나면 죽음의 재앙을 받는다'

라고 설파하여신도들이 자신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게 만들었다.
박신자는 오대양의 신도들을 집단으로 합숙생활을 하게 했으며
배신자는 가혹하게 린치를 가하는 등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도들 위에 군림했다. 박신자는 많은 사채를 끌어들이고

채권자들에게 빛을 갚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다.

 

 

 

 

[ 사진10. 오대양사건 변사체 가족에게 인계 ]

 

 

 

187년 8월16일 주유소를 경영하는 이상열(가명)이

박신자에게 빌려준 5억원을 받으러 갔다가
오대양 직원들에 11시간 동안이나 감금을 당하면서
돈을 포기하라는 각서를 강요당한 뒤에 풀어준 사건이

발생했다. 이상열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여 이상열을

폭행한 오대양 직원 13명을 구속했고박신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으나 조사를 받는 도중 실신을 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오대양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학생, 유아원생 등 1백여명도 종적을 감추었다.

 

 

 

 

[ 사진11. 오대양사건 변사체를 경찰이 옮기고 있음 ]

 

 


이때 박신자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박신자에게 돈을 꾸어주었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 채권자가 수십 명에 이르렀고 채권액도

80억원을 넘게 되었다. 이상열의 단순 폭행사건에서 거액

사기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경찰은 박신자의 행방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8월28일 한 채권자가

오대양 용인공장에 잠적되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
충남 경찰은 오대양 공장을 기습하여 어린이 19명 등 49명을 발견해
대전으로 데리고 왔으나 천장에 숨어 있던 박신자 등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 사진12. 오대양사건 천장 변사체 모습 ]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여기에 있다.
오대양 공장을 기습한 경찰이 천장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이 추정한 박신자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박신자를 비롯한 31구의 시체가 외부에서 옮겨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오대양사건을

집단자살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사실상 명백한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의 추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교주인 박신자는

집단 도피가 한계에 이르렀고 자살을 하자고 충동을 한 뒤에
먼저 자살을 하고 나머지 신도들이 뒤따라 자살을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31구의 시신이 전혀 반항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 사진13. 오대양사건 천장 변사체 모습 ]

 

 


그러나 이러한 결론도 맞지 않는다. 천장에서 발견된 31구의

시신은 대부분 손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자의로 죽음에

동의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참고로 양손이 묶여 있는

시신이 5구, 양손과 양다리가 묶여 있던 시신이 3구,
양다리만 묶여 있던 시신이 여러 구였다. 치안본부 감식반은

박신자가 죽은 뒤에 박신자의 두 아들(24세, 22세)이 차례로
이들을 살해하고 자신들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보았다.
그들의 목을 맨 상처가 가장 깊었기 때문에 대들보에 목을 매었다고

보는 것이다. 오대양의 공장장 이강수는 이들의 시체를 천장으로

옮긴 뒤에 자신은 대들보에 목을 맨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이강수도

31명의 사람들 중 상당한 숫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 사진14. 오대양사건 천장 변사체 모습 ]

 

 

 

하지만 오대양 사건은 미스터리다. 어쩌면 건국이래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31명의 추종자들이

사장, 또는 교주의 지시로 자살, 또는 자살에 동의했다는 것은

한국판 '인민사원'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막대한

자금의 행방, 권력층과의 연계설이 나돌았고 두 아들이 박신자를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충남도청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이 무관하다는 경찰의 발표를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채권자들의 빛 독촉과 경찰의 추적이 동기라고 볼 수도 있으나

석연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대양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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