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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쌤]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8월10일>

 

 

 

 

[ 사진1.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 2010년   일본 간 나오토 총리, '한.일병합 100년 담화' 발표

 

▶ 2009년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 방북

 

▶ 2008년   박태환,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인 최초 남자 자유형 금메달

 

▶ 2005년   노동부, 파업 중인 아시아나항공에 긴급조정권 발동

 

▶ 2003년   이탈리아서 세계최초의 복제 망아지 ‘프로메테아’ 탄생

 

▶ 2003년   러시아 우주인 말렌첸코 미국인 에카테리나 인공위성 통해 원격결혼식 거행

 

▶ 1999년   네덜란드에서 `안락사`인정 법안 세계최초로 마련

 

▶ 1999년   지미 카터 전 미국대통령 '자유의 메달' 수상

 

▶ 1998년   정부, 주민등록번호 포함 공공번호 83종 연도표기방식 확정

 

▶ 1990년   삼성전자, 16메가D램 개발

 

▶ 1989년   콜린 파월, 미국 사상 첫 흑인 합참의장

 

▶ 1988년   울진 원전1호기(발전용량 95만Kw) 준공

 

▶ 1983년   프랑스, 챠드내전에 개입. 공수부대 투입

 

▶ 1981년   북한군 비무장지대서 무차별 사격

 

▶ 1976년   국제언론인협회(IPI) 한국위 위원장에 조선일보사 방일영 대표 선임

 

▶ 1971년   경기도 광주대단지(現 . 성남시) 난동사건

 

▶ 1964년   전국언론인대회, 언론윤리위법 철폐투쟁 결의

 

▶ 1961년   한국-카메룬 국교 수립

 

▶ 1961년   한국 표준자오선 127도 30분에서 135도로 변경

 

▶ 1959년   우장춘 박사 별세

 

▶ 1958년   소련 세계 최대의 쿠이비세프 수력발전소 준공

 

▶ 1954년   인도차이나 반도 휴전 성립

 

▶ 1946년   북한 주요산업의 국유화법 공포

 

▶ 1945년   송진우, 총독부의 정권이양 교섭을 거절

 

▶ 1945년   일본, 전쟁 최고 지도자 회의에서 항복 결정

 

▶ 1945년   국군 가장한 무장간첩 검거

 

▶ 1940년   조선일보 동아일보 강제 폐간

 

▶ 1939년   철도국, 목탄자동차 시험

 

▶ 1934년   남한에 풍수해

 

▶ 1925년   언론인, 국사학자 천관우 출생

 

▶ 1920년   터키, 연합국과 세브르강화조약 조인

 

▶ 1913년   부카레스트 강화조약 조인 (제2차 발칸전쟁 종료)

 

▶ 1901년   독립운동가 이봉창 출생

 

▶ 1900년   영국 일본 공사, 용암포조차 철폐와 의주개시를 요구

 

▶ 1898년   제국신문 창간

 

▶ 1894년   작가 조명희 출생

 

▶ 1874년   미국의 제31대 대통령(1929~33 재임) 후버 출생

 

▶ 1861년   항 장티푸스 백신을 개발한 영국의 세균학자 라이트 출생

 

▶ 1809년   에콰도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1802년   독일 물리학자 애피누스 사망

 

▶ 1792년   파리시민 봉기, 프랑스 국왕을 의회내에 유폐

 

▶ 1519년   페르디난드 마젤란, 최초의 세계일주 출항

 

▶ 1418년   조선, 세종 즉위

 

 

 

 

[ 사진2.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셨던 사건을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로 광주대단지(現 . 성남시) 난동사건입니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개발독재시대의 대표적인 참사입니다.

 

 

 

[ 사진3.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  발  단 -

경기도 광주 대단지는 본디 서울의 빈민가를 제거하기 위해 계획되었다. 1편에서도 말했듯이 개발의 상징이자 신문물의 심장이 되어야 할 서울에 너저분하게 널린 빈민가는 큰 문제거리였고,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용산역 부근을 정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 지시를 당시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충실히 이행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김 시장은 빈민촌 정리를 위해서 여러 가지 정책을 시행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와우아파트라는 희대의 업적을 남긴 시민 아파트 건설과 서울 빈민 이주 계획이었다. 


1967년 7월 18일 김 시장은 23만여 동의 무허가 주택을 철거하고, 127만 명을 서울시 밖으로 이전시키며, 광주군에 50만 명이 거주할 수 있는 10만 5천여 가구를 건설하는 원대한 계획을 수립한다. 1969년부터 마장동, 청계천변, 용두동의 빈민 2만 명을 광주로 이전시켰고, 얼마 안 되서 봉천동, 숭인동, 창신동, 상&하왕십리의 빈민까지 광주 대단지로 몰려들었다.


수 많은 빈민들이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광주로 갔으나 광주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그 곳에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고, 상업시설이라고 부를만한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약 15만명에서 20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허허벌판에서 천막을 치고 살게 된 것이다. 당시 그곳에 거주했던 전성천 목사의 말에 의하면 굶어죽은 사람 시체 치우는 일이 가장 큰 일이었다고 했으니 그 참상이 눈 앞에 선할 지경이다.


이런 막장스러운 상황을 만들어낸 것은 계획을 입안한 자들의 생각이었다. 이들은 사람 50만 명을 대강 때려 넣어두면 알아서 서로 나눠먹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이 계획을 추진했던 것이다. 이들의 생각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는데, 실제로 나눠먹기는 했다. 굶주림에 반쯤 맛이 가버린 부모가 갓난 애기를 삶았고 그 냄새에 이끌린 이웃들이 나눠먹었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으니 말이다.

 

 

 

[ 사진4.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 분  양  권 -

 

[ 사진5.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이렇듯 도저히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에 놓여진 이들이 분양권을 포기하고 서울의 판자집 신세로 전락하는 일이 속출했다. 이곳에 대한 개발 논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던 터라 건축 브로커들은 서울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분양권을 매입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개입으로 입주권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어떤 이는 입주권을 몇 십장씩 사들이기도 했다. 당연히 사기꾼 또한 몰려왔고, 위조 등의 사기사건과 철거관련 비리 등의 범죄들이 만연했었다. 


이러한 개발 붐은 1971년 대통령 선거를 기점으로 절정에 달했다. 당시 차지철 후보의 공약인 ‘1백 개의 공장 유치로 실업자 구제’, ‘토지의 무상상여와 5년간의 세금 면제’ 등등의 공약으로 이 저주받은 땅이 노다지로 둔갑하게 된 것이다.


입주권을 사기 위한 아귀다툼 속에서 7월 14일, 갑자기 정부와 서울시는 입주권의 거래를 금지한다. 그 후 전매계약자들은 매수계약을 체결해야한다며 8천원에서 1만 2천원을 일시불로 낼 것을 요구한다. 이는 원래 계약하기로 했던 금액의 40배에서 800배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토지 취득세로 1만원, 있지도 않은 주택에 대한 등기세로 1만원을 더 뜯어갔고, 보름 안에 건물을 올리지 않는다면 불하를 취소하기로 한다는 공고를 낸다. 결국 입주권을 산 이들은 스스로 지옥으로 가는 급행 티켓을 끊어버린 것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는 이미 좌절해 있던, 입주권을 산 이들을 분노케 만들었다.

전성천 목사는 단지의 분노가 폭발하기 직전에 각 단지의 반별 대표자들은 자신에게 모이라는 사발통문을 돌렸고, 이렇게 모인 이들은 1971년 7월 17일 ‘불하가격시정대책위원해’라는 조직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7월 19일에 유지대회를 열었는데 무려 2,000명이나 되는 인원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1만 5천명의 서명을 받아 요구사항을 작성했는데,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대지불하가격 인하 (평당 1500원 이하)

 

 2. 불하가격 상후 10년간 연부 상환

 

 3, 제 세금 5년간 면제

 

 4, 구호대책과 취로사업 보장

 

 

경기도의 두 출장소는 이들의 요구사항을 깔끔하게 씹어버렸고, 이에 분노한 주민들은 당일 성남 출장소 앞에서 시위를 벌이며 새로운 요구사항을 발표한다. 그것은 아래와 같다.

 

 

 

1, 대지를 무상으로 해줄 것

 

2, 세금을 면제시켜 줄 것

 

3, 시급한 민생고를 서울시에서 해결해 줄 것

 

 

 

8월 9일, 성남 출장소장은 삐라가 난립하는 등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하고 서울시 주택관리관에게 '긴급상황 발생, 현지에서 해결 불가능' 이라는 도움 요청을 한다. 이에 주택관리관은 최종환 부시장을 대동하여 황급히 광주 대단지로 향하는데, 이들은 300명의 주민들에게 둘러쌓인 채로 협상을 시작하나 결국 결렬된다. 다음날 11시에 양택식 서울 시장이 직접 와서 다시 교섭하겠다는 내용만 타결한 채 협상은 끝났고, 투쟁위는 시장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자며 주민들에게 협상에 참여할 것을 독려했다. 여차하면 실력행사를 할 것도 각오한 채 말이다.


8월 10일, 오전 9시부터 거대한 민중들이 양택식 서울 시장을 기다렸다. 그러나 빗길에 차가 막힌 나머지 양택식 시장은 11시가 되어도 도착할 수 없었고, 감정이 격양될대로 격양된 민중 속에서 한 외침이 터져나온다.


 

“서울 시장은 우리를 사람으로도 보지 않는다.”

 

 

궐기대회는 폭동으로 발전하고 "허울 좋은 선전말고 실업 군중 구제하라!", "살인적인 불하가격 반대" 등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출장소로 몰려가서 출장소를 아작을 내버린다.


당시 시위대에는 70대 노인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모두 식칼과 곡괭이, 몽둥이 등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당시 목격자의 증언은 아래와 같다.


 

“참가한 군중 손에는 식칼, 곡괭이, 몽둥이 등이 쥐어져 있었고 

눈망울은 먹이를 찾아 날뛰는 야수처럼 살기가 서려 있었다.”

(박기정, 1971)


 

단지의 골목 곳곳에는 '우리는 더 이상 속을 수 없다', '대책을 세워 달라' 등의 벽보가 붙어있었고, 군중은 "죽여라, 밟아버려라." 라는 구호를 외치면서 출장소에서 근방의 서울시 파견 광주단지 사업소로 몰려가서 기물들을 작살내놓고 방화를 시도했으나 비 때문에 사업소는 불타는 꼴을 면했다.


그리고 성난 군중은 지나가는 차들을 닥치는 대로 탈취하여 고함을 지르며 단지 거리를 누비고 다녔고, 일부는 서울로 가는 길목을 막아서서, 지나가는 택시들을 박살내며 “우리는 몇 끼니를 걸러 죽을 지경에 이르렀는데 팔자 좋게 택시만 타느냐”, “죽어도 같이 죽자”, “왜 도망가려 하느냐”고 욕설을 퍼부으며 승객들을 강제로 하차시켰다.

 

 

 

[ 사진6.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한 시민은 경찰관에게 맞아서 머리가 터졌다며 자신을 때린 경찰관을 죽여버리겠다며 날뛰었다, 시위를 진압하기 위한 경찰들이 나타나자 시위대는 우리들에게 밥 줄 생각은 없고, 몽둥이로 막으려 한다면서 경찰에게 맞섰다. 이런 사태속에서 지나가던 참외트럭이 넘어져 참외가 길바닥에 구르자 굶주림에 미쳐버린 군중들은 순식간에 한 트럭 분량의 참외를 다 먹어치워버렸는데, 그 야수적인 실상은 소설 <아홉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나이>에 잘 표현되어 있다.

 

오후 2시가 되자 성난 군중은 광주 경찰서 성남지서를 다 때려부수고 경찰차를 불태워버렸다. 당시 광주 대단지내에 지나는 버스는 6대에 버스노선도 제대로 없는 지경이었지만 소요 동안 불탄 차만 22대에 달할 정도였으니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민란은 오후가 되어서야 간신히 진정될 수 있었다. 늦게나마 도착한 양택식 시장이 투쟁위의 요구를 무조건적으로 수락하겠다는 발표가 있고 나서야 주민들은 해산하였다. 양 시장은 추가로 조치를 취하기로 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전매 입주자들의 대지가격도 원 철거 입주자와 같이 취급한다.

 

 2, 주민 복지를 위하여 구호 양곡을 방출하고 자조 근로 공사를 아울러 실시한다.

 

3, 경기도 당국과 협의하여 취득세 부과는 보류도록 하겠으며, 그 밖의 세금도 가급적 면제도록 중앙정부와 협의하겠다.

 

4, 주민들은 당국과 협조하여 계속 지역발전에 노력해 줄 것을 바란다.

 

 

 

이 민란속에서 주민과 경찰 100여명이 부상당했고, 민란의 주동자로 22명이 처벌당했다.

이런 조건 속에서 탄생한 도시가 바로 성남시였다.

 

 

[ 사진7. 경기도 광주대단지 난동사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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