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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8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혁명재판소에 회부된 당시 민족일보 관계자들 ]

 

 

 

 

▶ 2002년   장대환 총리 국회인준안 부결

 

▶ 1999년   러시아 유인 우주정거장 미르호, 13년 만에 공식활동 종료

 

▶ 1997년   한국전기통신공사법 폐지

 

▶ 1996년   광주지하철 1호선 기공

 

▶ 1996년   영국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 이혼

 

▶ 1996년   우정사업경영개선기획단 발족

 

▶ 1995년   한국-칠레, 외교관사증면제협정 체결

 

▶ 1991년   동아건설, 리비아 대수로 1차 공사 통수식

 

▶ 1988년   독일 람슈타인 에어쇼 참사

 

▶ 1987년   필리핀 코라손 아키노 대통령에 대한 쿠데타기도 실패, 55명 사망

 

▶ 1982년   독립기념관 건립준비위원회 발족

 

▶ 1980년   대학휴교령 107일 만에 해제

 

▶ 1973년   남북조절위원회 평양측 대화중단성명 발표

 

▶ 1970년   김민기 `아침이슬` 발표

 

▶ 1963년   킹 목서, 워싱턴 대행진

 

▶ 1962년   장면, 이주당 사건으로 구속

 

▶ 1962년   순천시에 수해(1000여명 사상)

 

▶ 1961년   민족일보 사건 3명에 사형선고

 

▶ 1960년   미주(美洲)기구(OAS)외상회의서 중남미공산화 확대를 경고하는 산호세 선

 

                 언 채택

 

▶ 1960년   중앙전화국 용산분국 EMD 자동식 교환시설 개통

 

▶ 1960년   EMD방식 자동전화교환기 재개통

 

▶ 1957년   미국, 중거리탄도탄(IRBM) 실험에 성공

 

▶ 1952년   한국-일본 간 독도분쟁 발생

 

▶ 1950년   6.25발발로 제1차 화폐개혁 단행

 

▶ 1946년   북조선노동당 결성

 

▶ 1945년   호지명 베트남공화국 임시정부 수립

 

▶ 1935년   이탈리아 전시(戰時)경제관리 단행, 회사배당 제한, 잉여금의 국채투자 명령

 

▶ 1933년   전국에 풍수해 7백41명 사망

 

▶ 1924년   총포화약류취체령(銃砲火藥類取締令) 시행규칙 공포

 

▶ 1922년   미국 뉴욕서 최초로 라디오 방송 광고(WEAF방송국)

 

▶ 1916년   독일, 루마니아에 선전포고

 

▶ 1912년   서양화가 이인성 출생

 

▶ 1911년   대구전기 설립

 

▶ 1899년   정치가 장면 출생

 

▶ 1893년   국어학자 이극로 출생

 

▶ 1861년   화가 안중식 출생

 

▶ 1749년   독일 문호 괴테 출생

 

▶ 1654년   옥센셰르나 사망

 

▶ 1645년   네델란드 법학자 그로티우스 사망

 

▶ 1231년   몽고 제1차 고려침입

 

▶ 1221년   십자군 패배

 

▶ 1215년   원나라 황제 쿠빌라이 출생

 

▶  430년   기독교 사상가 아우렐리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사망

 

 

 

 

 

[ 사진2. 혁명검찰부의 민족일보 사건 공판장 광경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대한민국 사상 최대의 언론탄압 사건이라

평가받는 민족일보 사건을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 사진3. 혁명재판소에 회부된 당시 민족일보 관계자들 ]

 

 

 

 

이승만 정권의 혹독한 탄압으로 지하에 잠복했던 혁신계 세력이

 4·19혁명으로 정치적 자유의 바람을 타고 급격히 부상하는 과정에서

 󰡔민족일보󰡕가 1961년 2월 13일 창간되었다. 서상일·윤길중·김달호·

이동화·이종률·송지영·이건호·안신규 등 혁신계의 진보적인 인물들이

창간 과정에서부터 관계하였고, 민족일보는 창간 이후 당시 봇물처럼

분출하던 남북협상·중립화통일·민족자주통일 등에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 사진4. 민족일보 상고 공판 모습 ]

 

 

 


민족일보는 사시(社是)를 “민족의 진로를 제시하고, 부정과 부패를 고발하며,

근로대중의 권익을 옹호하고, 조국의 통일을 절규한다”고 했으며, 대담한 편집과

진보적인 색채 때문에 발간되자마자 국민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가판율 1위를

기록했다. 이러한 민족일보의 반향은 장면 정부의 미움을 받았고, 곧이어

5·16군사쿠데타 세력에 의한 탄압의 직접 원인이 되었다.

 

 

 

 

[ 사진5. 군재판에 회부된 당시 민족일보 언론인들 ]

 

 

 


반공 이데올로기에 기초해 군사독재 체제를 수립한 박정희 군사정권은

쿠데타 발생 이틀 후인 18일 언론에 대한 사전검열 조치를 발표함과 함께

혁신계를 대변해 왔던 민족일보사의 간부 등을 체포하였다.

그리고 다음날인 19일 지령 92호로 민족일보는 폐간 조치되었다.

5월 22일 치안국은 민족일보와 동사 사장 조용수의 죄상 및

그 배후 관계를 밝히면서 “간첩 사건으로 병 보석 중 일본으로

도피한 바 있던 전 조봉암의 비서 이영근의 지령하에 평화통일 방안을

주창하면서 혁신 지도자와 혁신계 정당 및 기관지 발간에 열중하여 왔다”고

발표하였다.

 

 

 

 

[ 사진6. 민족일보 사건 공판 당시 재판정의 광경 ]

 

 

 


검찰 당국은 이들 민족일보 관련자들을‘특정범죄 처벌에 관한

 특례법’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 10월 31일 최종 공판에서

조용수·안신규·송지영 3명에 대해서는 원심대로 사형 확정,

이종률·양수정·이건호·이상두 네 피고인에게는 원심을 파기해

이종률·이상두에게 징역 10년, 양수정·이건호에게 징역 5년을

각각 선고했다. 12월 20일 박정희 의장은 사형이 확정된 3명 중

조용수에 대한 형을 확인하고, 안신규·송지영은 확인 과정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시켰다. 조용수는 바로 다음 날인 21일 오후

서대문형무소에서 사형이 집행되었다. 한편 당시 유일한 공채기자였던

이수병은 후일 인혁당 사건으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사진7. 민족일보 사건에 대해 증언하는 윤길중 피고의 모습 ]

 

 

 

 

대한민국 사상 최대의 언론탄압 사건이라 평가받는 민족일보 사건의

조용수 사장은 2006년 11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로부터

명예회복을 받았고, 2008년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2부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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