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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13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 2010년   대한민국 국적 생존자 중 5000만 번째 주민등록자 탄생

 

▶ 2010년   69일간 매몰됐던 칠레 광부 33인 구조  

 

▶ 2009년   중국 최후의 '건국 장성' 뤼정차오 사망

 

▶ 2002년   전파연구소 `형식승인 처리방법`을 제정, 고시

 

▶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 1999년   미국 프로농구 선수 윌트 체임벌린 사망

 

▶ 1999년   탤런트 서갑숙 자전 에세이집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출간

 

▶ 1999년   유엔, 탈북자 `난민`으로 인정

 

▶ 1999년   로버트 먼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

 

▶ 1997년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북아일랜드 분규발생후 76년 만에 회동

 

▶ 1996년   독일 `슈테른`지 창설자 헨리 나넨 사망

 

▶ 1995년   영국 반핵 운동가 롯블라트 199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

 

▶ 1994년   북아일앤드 신교도 무장조직들, 구교도와 아일랜드 공화군에 대한 휴전선언 성명 발표

 

▶ 1993년   미국 러셀 헐스-조제프 테일러, 세계 최초로 쌍성 펄사 발견 공로로 노벨물리학상 수상

 

▶ 1992년   미국 시카고대학의 게리 베커 교수, 노벨경제학상 수상

 

▶ 1992년   북한탈출 귀순자 안혁, 강철환, 북한 연변 등 12곳의 정치범수용소에 20여만명이 수용돼 있다고 밝혀

 

▶ 1990년   노태우 대통령, 범죄와의 전쟁 선포

 

▶ 1986년   유성환 의원, 국회 대정부질문중 국시(國是)발언

 

▶ 1982년   원전 9-10호기 공사 기공(경북 울진)   

 

▶ 1981년   문교부, 국민학교 영어교육 결정

 

▶ 1980년   국보위, 사회악사범 4만7천여명 검거. 군부대 순화교육(삼청교육)중이라고 발표

 

▶ 1979년   신민-통일당 의원 69명, 의원직 사퇴서 제출(11.15 반려)

 

▶ 1978년   중국, 모스크바 겨냥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설치 발표

 

▶ 1977년   루프트한자 여객기 서독 적군파에 피랍

 

▶ 1970년   캐나다-중국, 국교 수립

 

▶ 1969년   인왕산 청운(淸雲)스카이웨이(現-인왕스카이웨이) 개통

 

▶ 1967년   NATO본부 파리 철수. 16일부터 벨기에 브뤼셀서 개소

 

▶ 1965년   맹호부대 인천항 출발

 

▶ 1964년   공화당 이만섭의원 판문점에 남북한면회소 설치 제의

 

▶ 1964년   뇌염환자 2957명. 사망 953명 발표

 

▶ 1962년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초연

 

▶ 1962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창립

 

▶ 1960년   북한, 중국에 대한 4억 2000만루블 차관에 조인

 

▶ 1958년   미국, 핵실험 정지 17개국 결의안 유엔총회 정치위원회에 제출

 

▶ 1958년   말라가시, 공화국 선포

 

▶ 1957년   이집트군, 시리아 침입

 

▶ 1952년   미국-영국-프랑스, 대(對)유고 원조협정 조인

 

▶ 1948년   사범학교 제외한 중고교 남녀공학제 폐지

 

▶ 1946년   조선민족청년단 발족(단장 이범석)

 

▶ 1945년   조선공산당 북조선분국 발족

 

▶ 1943년   총독부, 전시교육비상조치방책 발표

 

▶ 1943년   이탈리아, 독일에 선전포고

 

▶ 1925년   마거릿 대처 출생

 

▶ 1924년   '멍텅구리 헛물켜기' 연재

 

▶ 1919년   경성악우회, 종로 청년회관에서 제1회 음악연주회 개최

 

▶ 1909년   스위스의 법률가 겸 철학자 카를 힐티 사망

 

▶ 1909년   제1회 사법시험 실시

 

▶ 1908년   의병장 이강년 순국

 

▶ 1908년   월북 시인 임화 출생

 

▶ 1905년   헨리 어빙 사망

 

▶ 1866년   병인양요

 

▶ 1822년   이탈리아의 신고전주의 조각가 안토니오 카노바 사망

 

▶   552년   백제, 일본에 불교 전수

 

▶     54년   제4대 로마제국 황제 클라디우스 사망

 

▶     54년   제5대 로마제국 황제 네로 즉위      

 

 

 

 

 

[ 사진2.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90년 10월13일 대한민국 노태우대통령이

특별선언을 했습니다. 바로 범죄와의 전쟁을 치뤄 근절하겠다는 특별

선언이였습니다. 하지만 실제 민생치안을 강화하려는 치밀한 계획을

기반으로 두고 나온 정책이라기보다는 집권 4년차를 앞두고 어지러운

정국과 사회분위기를 진정시키고, 주도권을 잡으려는 이벤트성 정책

이었다는 평가가 많았었죠. 대통령이자 집권여당인 민자당 총재였던

노태우는 조기 레임덕 조짐을 보이면서 김영삼 민자당 대표 최고위원

으로부터 노골적으로 탈당 등을 요구받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 사진3.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한 동기의 진정성을 불문하고 민생치안을

강화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 정책은 단기적으로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고, ‘전쟁’ 선포 이후 공보처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92%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으로 집계되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쟁’ 선포 후 일년 동안 조직폭력배

1,923명을 검거했다고 되어 있으니 대통령이 팔 걷어 부치고 나선 전쟁이

효과를 보긴 본 셈입니다. 하지만 거물급 조직폭력배는 대부분 잠적하고

검거 실적용으로 조직원들을 잡아들이기 일쑤였고 이 마저도 집행유예,

벌금형 등으로 1년 안에 50%가 풀려났습니다.

 

 

 

 

[ 사진4.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전체적인 치안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1992년 1월 경찰청이 내놓은 ‘10.13범죄와의 전쟁 2주년 평가서’를 보면

‘2년간의 대범죄전쟁으로 강.절도 등 주요 5대 범죄는 감소추세에 있으나,

신형범죄와 충동적인 범죄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적시돼 있습니다.

오히려 ‘전쟁’ 운운하며 살벌한 사회 분위기를 조장하며 시민불안을

가중시켰고, 실적 맞추기용 영장발부 및 인권침해 사례가 속출함에 따라

비판이 고조되었죠.

 

 

 

 

[ 사진5.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결국 ‘범죄와의 전쟁’ 정책은 노태우 대통령과 함께 운명을 같이 했습니다.

1992년 10월 ‘범죄와의 전쟁’ 2주년 즈음에 노태우는 결국 민자당을 탈당했죠.

정확히 말하면 탈당 강요에 백기투항 했고, 이벤트성 정책으로 본인의 레임덕을

조금 더 연장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운명을 바꾸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1992년 12월

대통령으로 당선된 김영삼대통령은 ‘범죄와의 전쟁’ 정책을 승계하지 않았을 뿐더러

1995년 11월 노태우대통령을 구속시키며 범죄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마도 실제로는

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노태우는 최고의 ‘대어’가 잡힌 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 사진6. 노태우 범죄와의전쟁 ]

 

 

 


글 출처 : http://www.entermedia.co.kr/news/news_view.html?idx=10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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