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서울쌤]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7월9일 >
[ 사진1. 연세대생 이한열군 국민장 영결식 ]
▶ 2012년 "병신춤의 대가" 공옥진 여사 별세
▶ 2005년 북한 6자회담 복귀 선언
▶ 2004년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아차산 고구려 보루터에서 서기 500년 전후로 추정되는 건물터와 기와, 토기 조각 발견
▶ 2004년 월북한 미군 탈영병 찰스 젠킨스, 인도서 일본인 나애 소가와 상봉
▶ 2002년 정부 "도로교통법 위반자 벌점 등에 대한 특별감면조치"의결, 481만명 교통벌점 말소
▶ 2002년 아프리카 50개국이 참여한 아프리카연합(AU)공식 출범
▶ 2001년 박세리, 미국 LPGA투어 제이미 파크로거 클래식에서 최종합계 15언더파 269타로 우승
▶ 1996년 한국-파라과이, 범죄인 인도협정 체결
▶ 1987년 연세대생 이한열군 장례식 노제에 100만 인파 운집
▶ 1995년 순복음교회 안승운씨 안길서 납북
▶ 1982년 미국 팬암 보잉 727기 뉴올리언즈항공 이륙 중 벼락으로 추락 153명 사망
▶ 1975년 사회안전법안, 방위세법안, 민방위기본법안, 교육관계법안 등 4대 전시입법안 국회 통과
▶ 1971년 키신저 극비 중국 방문
▶ 1966년 한미행정협정(SOFA) 조인
▶ 1965년 남정현, 소설"분지"로 구속
▶ 1965년 프랑스, 나토 핵군안을 거부
▶ 1963년 말레이시아연방협정 조인
▶ 1955년 퍼그워시 성명 발표
▶ 1819년 재봉틀 발명가 하우 출생
▶ 1816년 아르헨티나,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 660년 신라와 백제의 황산(黃山)벌 전투
[ 사진2. 연세대생 이한열군 국민장 영결식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연세대생 이한열군 장례식 노제에
대한민국 국민 100만 인파 운집한 내용에 대해서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왜 그때 중산층, 셀러리맨,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거리로 나와 이한열군을
애도 했는지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 사진3. 연세대생 이한열군 국민장 영결식 ]
연세대 교문앞에서 시위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사망한
연세대 이한열군의 장례식이 1987년 7월 9일 거행됐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연세대에서 서울시청앞까지 장례행렬이 이어지자
광장앞 인도와 차도에는 100만 인파가 모여들어 이군의 죽음을 애도했다.
이군의 죽음은 한 대학생의 단순한 죽음이 아니었다.
한국 현대사에 하나의 분수령을 이룬 ‘6월항쟁’의 처절하고 비장한 마무리였다.
[ 사진4. 연세대생 이한열군 국민장 영결식 ]
국민들은 당시 민정당이 노태우 대표를 후보로 선출해 간접선거 방식인
이른바 체육관 선거로 정권을 연장하려는 데 거세게 저항했다.
게다가 2월의 박종철고문치사사건과 이른바 4·13 호헌조치는 학생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학생시위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시민단체들은 학생들과 연합해
‘박종철군 고문살인 은폐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를 6월10일 전국적으로 개최하기로 했다.
당시 연세대 2학년생이던 이군은 이 대회의 일환으로 전날인
6월 9일 연세대 교문앞에서 벌이진 시위에 참가했다가 변을 당한 것이다.
[ 사진5. 연세대생 이한열군 국민장 영결식 ]
이군 사건은 도시 중산층과 샐러리맨들을 학생시위에 가세토록 하는데 결정적인 촉매제가 됐다.
그때까지 학생시위대를 ‘비난하지 않는 정도’의 소극적 호응으로 대하던 중산층이
적극적으로 시위대에 가담하기 시작했고 정권은 결국 6·29선언이란 항복문서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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