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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9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베를린 장벽 붕괴 ]

 

 

 

▶ 2005년   제5차 북핵 6자회담 개막(베이징)

 

▶ 2005년   무형문화재 제31호 탱화장 고재석(81)옹 별세

 

▶ 2001년   일본 자위대, 아프간에 2차대전후 첫 전쟁지역 함대 파견

 

▶ 2000년   국학자 이가원 교수 별세

 

▶ 2000년   중국 교개 3왕조(夏왕조-商왕조-왕조周)에 대한 구체적 연표 공식 발표, 하왕조 개국은 기원전 2070년

 

▶ 1999년   한평생 국내 오페라 개척한 성악대모 김자경 여사 별세

 

▶ 1996년   한국불교연 이사장 이기영 박사 별세

 

▶ 1996년   금호미술관 개관

 

▶ 1991년   이브 몽탕 사망

 

▶ 1990년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첫 여성 대통령에 당선

 

▶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 1989년   중국 최고실력자 덩샤오핑(鄧小平) 국가주석직 사임

 

▶ 1989년   한국-멕시코, 경제과학 및 기술협정 체결

 

▶ 1989년   장쩌민(江澤民), 중국 군사위 주석에 선출

 

▶ 1988년   조지 부시, 제41대 미국 대통령에 당선

 

▶ 1987년   민주당, 임시전당대회서 김영삼 총재를 대통령후보로 추대

 

▶ 1983년   레이건 미국 대통령 일본 방문, 나카소네 수상과 회담

 

▶ 1981년   노태우 정무장관 유럽-아프리카 13개국 순방 등정

 

▶ 1970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 사망

 

▶ 1966년   경북선 철도 개통

 

▶ 1965년   마르코스, 필리핀대통령 당선

 

▶ 1964년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일본 수상에 선출

 

▶ 1963년   일본, 우우타에서 탄광폭발 458명 사망

 

▶ 1961년   에쿠아도르 부통령 아르세메뇨, 대통령으로 승격 선서

 

▶ 1960년   캐네디, 미국 대통령 당선

 

▶ 1957년   캄보디아 중립법 공포

 

▶ 1957년   소련-인도 경제협력협정 조인

 

▶ 1954년   크메르 독립

 

▶ 1953년   캄보디아, 프랑스로부터 독립

 

▶ 1949년   미국,영국,프랑스 3국 외무장관, 독일문제 회담

 

▶ 1947년   서정주 시인의 시 `국화 옆에서` 경향신문에 발표

 

▶ 1945년   파리서 2차대전 배상회의 개최

 

▶ 1945년   중국 국공내전 시작

 

▶ 1942년   미국, 프랑스와 단교

 

▶ 1938년   나치, 유태인학살 시작

 

▶ 1938년   일제, 경제경찰제도 실시

 

▶ 1937년   일본, 상해점령

 

▶ 1925년   히틀러 '친위대(SS)' 탄생

 

▶ 1920년   보통학교 수업연한을 6년으로 연장

 

▶ 1920년   단찌히 자유시 선언

 

▶ 1919년   김원봉 의열단 조직

 

▶ 1918년   독일 노동자 혁명, 빌헬름 2세 퇴위

 

▶ 1918년   프랑스의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 사망

 

▶ 1905년   13도 유생들, 일본공사의 횡포 통박 성명

 

▶ 1899년   소파 방정환 출생

 

▶ 1878년   도산 안창호 출생

 

▶ 1874년   전두엽절제술을 개발한 포루투갈의 신경학자 에가스 모니스 출생

 

▶ 1872년   미국 보스톤에 대화재. 850명 사망

 

▶ 1841년   영국의 왕 에드워드7세 출생

 

▶ 1818년   러시아 작가 투르게네프 출생

 

▶ 1799년   나폴레옹, 쿠데타에 성공

 

 

 

[ 사진2. 베를린 장벽 붕괴 ]

 

 

 

동서 분단과 냉전체제의 상징이던 베를린 장벽이 1989년 11월 9일 붕괴됐다.

동독내의 개혁열기가 비등하고 동독인들의 서독으로의 대규모 이주가 계속되자

동독 스스로 분단의 벽을 허문 것이다. 베를린 장벽은 지난 1961년 8월 에리히

호네커의 감독 아래 설치돼 동베를린 시민들의 서베를린으로의 탈출을 막았다.

 

 

 

[ 사진3. 베를린 장벽 붕괴 ]

 

 

 

장벽은 폭 50m의 완충지대가 있는 66㎞의 이중철망과 55㎞의 단선철망, 25㎞의

콘크리트벽 등으로 구성됐다. 이 장벽과 구조물들을 제거하는데 4백명의 전문가가

달라붙어 3년이 소요됐으며 1억마르크의 돈이 들었다. 제거된 흙과 시멘트는 무려

75만t이나 됐다. 동서독의 화해분위기는 이미 지난 1963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일시 개방, 동베를린과 서베를린 간 인적교류 즉, 주민왕래를 실현

시키면서 시작됐다. 이것은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분단국 최초의 자유왕래였다.

 

 

 

[ 사진4. 베를린 장벽 붕괴 ]

 

 

 

이를 계기로 양측간에 설치된 ‘철의 장막’은 차근차근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해나갔다. 첫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지 1년도 채 안돼 동서독은 1964년 부활절을 계기로 자유왕래를 실시

하기에 이른다. 1964년 서독은 서독국민이 제한없이 동독내 어느지역도 방문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동독은 60세이상 연금수혜자에게 서독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 사진5. 베를린 장벽 붕괴 ]

 

 

 

양독간의 꾸준한 교류가 계속되는 가운데 고르바초프가 개혁, 개방 정책을 펼치고

동구권에 민주화 개방화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동서독 통일에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1989년 5월 헝가리가 오스트리아 쪽 국경을 개방하면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서독으로 몰려들면서 동독의 체제 붕괴는 시간문제가 됐다. 여기에

피난민을 10만 명으로 예상한다는 서독 콜 총리의 발언이 알려지자 동독에서의 탈출은

현대판 엑소더스로 발전했다. 동독의 각 도시에서도 연일 반정부 데모가 이어졌다.

 

 

 

[ 사진6. 베를린 장벽 붕괴 ]

 

 

 

10월 2일 1만 명으로 시작된 시위는 민주화 시위에 유화적인 에곤 크렌트가

 공산당 서기장으로 선출되면서 더욱 거세졌다. 시위세력은 10월 30일에는 50만,

11월 4일에는 100만 명으로 불어났다. 마침내 11월 9일 , 소련은 동독에 비공산

정권이 들어서도 용인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그날 저녁 7시 동독 정부는 베를린

장벽을 포함해 모든 경계를 전면개방한다고 발표했다. 동베를린 시민들은

밤10시부터 검문소를 넘기 시작했다. 이후 통일 협상을 시작해 1990년 8월 31일

45개 조항으로 이뤄진 통일조약에 서명했고 5주 뒤인 10월 3일 협정이 발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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