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주민납치'에 해당되는 글 1건

[인서울쌤]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7월16일>

 

 

 

 

서해안 남북함저 교전상황도 ]

 

 

 

▶ 2005년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세손 이구(李玖)씨 사망

 

▶ 2003년   이두로 쓴 최고의 백제 시가(詩歌) 발견

 

▶ 2002년   북아일랜드의 아일랜드공화군(IRA), 과거 폭력행위 첫 사죄

 

▶ 2001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에 선출

 

▶ 2001년   미국 하원의원 8명, 김대중 대통령에게 서한을 보내 `한국의 언론자유 억압 우려` 표명

 

▶ 1999년   임창렬 경기도지사, 경기은행으로부터 1억원 받은 혐의로 구속

 

▶ 1999년   존 F 케네디 2세 비행기 추락사

 

▶ 1999년   탈옥수 신창원, 순천서 검거

 

▶ 1998년   미국 하원, 아태소위원회에서 한미관계 50주년 기념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

 

1997년   북한 도발에 의한 DMZ 교전

 

▶ 1989년   지휘자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사망

 

▶ 1986년   검찰, 부천경찰서 성고문사건 수사결과 발표

 

▶ 1985년   독일 소설가 하인리히 뵐 사망

 

▶ 1983년   문공부, 민족문화위인 57명 선정

 

▶ 1981년   미국, 핵확산금지지침 발표

 

▶ 1981년   조치훈 명인, 일본 본인방 획득

 

▶ 1980년   중국 혁명위 폐지하고 민선 인민정부로 대체

 

▶ 1979년   후세인 빈 온 말레이지아 수상 내한

 

▶ 1979년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취임

 

▶ 1978년   제4회 주요선진국 정상회담 개최(서독 본

 

▶ 1975년   방위세법 공포

 

▶ 1974년   비상군법회의 윤보선 전 대통령을 민청학련 관련혐의로 기소

 

▶ 1971년   `다리`誌 필화사건 무죄판결

 

▶ 1965년   한강 범람위기 위험수위 돌파. 중부지방에 폭우 사망 20명, 이재민 6만여명

 

▶ 1965년   소련, 중량 12.2톤의 세계최대 우주관측용 로케트 `프론트1호` 발사

 

▶ 1956년   국회, 유엔가입 국민운동 전개에 관한 결의안 채택

 

▶ 1952년   한국전서 미군 손해 11만2천843명이라고 미국무성 발표

 

▶ 1950년   정부, 대전에서 대구로 이전

 

▶ 1948년   국회, 정부조직법안 통과

 

▶ 1945년   뉴멕시코 사막서 원자폭탄 첫 실험

 

▶ 1945년   미국 최초의 원폭실험 성공

 

▶ 1944년   일본의 사이판섬 수비대 전멸

 

▶ 1941년   조 디마지오 56경기 연속안타

 

▶ 1919년   제10대 대통령 최규하 출생

 

▶ 1918년   러시아 마지막 차르(황제) 니콜라이 2세 처형

 

▶ 1916년   러시아의 동물학자, 미생물학자 메치니코프 사망

 

▶ 1913년   중국 안휘성 독립선언 이후 각성(各省) 독립선언

 

▶ 1908년   홍삼전매법, 인삼세법 반포

 

▶ 1900년   레닌, 러시아 탈출해 스위스 망명

 

▶ 1896년   프랑스 작가 에드몽 콩쿠르(콩쿠르형제중 형) 사망

 

▶ 1877년   미국 철도 스트라이크를 군대동원 진압

 

▶ 1872년   노르웨이 탐험가 아문센 출생

 

 

 

[ 사진2. 북한 도발 사진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6.25 전쟁 이후

북한의 테러와 우리나라를 계속 도발 했던 

사건들을 년도별로 정리해서 포스팅 해보겠습니다.

 

 

북한의 남한 공격 사건 일지

 

창랑호여객기 납북사건

1958년 부산발 서울행 대한국민항공사 소속 창랑호여객기는 34명을 태우고 이륙한 후, 평택 상공에서 납치되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 있는 순안공항에 강제 착륙당했다.북한으 언론기관을 통해 "대한국민항공사가 '의거월북' (자신의 의지로 군사분계선을 넘음) 했다"고 거짓 발표했다.이후 북한은 7명을 제외한 모두를 돌려보냈다.

 

 

 

 

 

해군함 공격

1967년 1월 19일 명태잡이 어선들의 월경을 막기 위해 초계중이던 당포함은 북한 동해안 동굴포대의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함장 김승배 중령, 부함장 황중식 소령을 포함, 장교 8명과 부사관 수병 71명 총승무원 79명 가운데 39명이 사망하고 40명이 부상했다.
 

 

 

 

 

김신조 사건
1968년 1월 북한 정찰국 소속 무장공비 31명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비밀리에 침투했다. 이들은 청와대 인근인 서울 세검정까지 들어왔다가 불심검문에 걸리자 수류탄과 기관총을 난사하며 저항했다. 무장공비 31명 가운데 28명은 사살됐고 2명은 달아났으며, 무장공비 가운데 한 명인 김신조는 현장에서 생포됐다.그러나 이 사고로 20여명의 민간인과 종로경찰서장 등이 목숨을 잃었다.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68년 10월 30일부터 11월 2일까지 3일간 120명의 북한 무장공비가 울진·삼척 지역에 침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군경과 예비군은 본격적인 토벌작전에서 공비 113명을 사살하고 7명을 생포하여 침투한 120명 모두를 소탕했다. 그러나 우리측도 18명이 사망하는 희생을 치렀다.
 

 

 

 

 

여객기 납치
69년 12월엔 승객과 승무원 51명을 태우고 강릉에서 서울로 가던 대한항공 여객기가 북한 간첩에 의해 원산으로 납북되는 사건도 있었다. 두 달 뒤 승객 중 39명만 풀려났고, 나머지는 현재까지 북한에 억류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육영수 여사 저격
1974년 8월 15일 국립극장에서 거행된 광복 제29주년 기념식에서 조총련계 재일교포 문세광이 대통령 박정희에게 권총을 발사했다. 이 사고로 육영수여사가 머리에 총상을 입고 사망했고 합창단의 한 여학생도 절명했다. 조사결과 1974년 5월에 북한의 대일공작선이며 재일교포 북송선이기도 한 ‘만경봉호(萬景峰號)’에서 대통령을 저격하라는 지령을 받았음이 밝혀졌다.
 

 

 

 

 

판문점 도끼 만행
1976년 8월. 북한군이 판문점 공동경비구연(JSA)에서 나무 가지치기 작업 중이던 유엔군과 한국인 노무자를 공격해 유엔군 소속 미군장교 2명을 도끼로 살해한 사건이다. 사건 직후 주한미군과 한국군은 ‘데프콘 3호’(경계상태 돌입)를 발령하고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러나 북한의 김일성이 유감의 뜻을 표명하는 사과문을 국제연합군측에 전달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아웅산 테러
83년 10월엔 ‘아웅산 국립묘지 테러’ 사건이 있었다. 당시 북한은 전 대통령을 겨냥해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 전 대통령이 미얀마의 아웅산 묘소에 도착하기 직전 폭탄이 터져 화를 면했다. 하지만 서석준 부총리 등 전 대통령의 수행원 17명이 숨졌다.
 

 

 

 

 

김포공항 테러
아시안게임을 불과 일주일 앞둔 86년에는 김포공항 국제선 청사 밖 쓰레기통서 폭탄이 터져 5명이 숨지고 30여 명이 중경상을 입은 참사가 발생했다. 당시 정부는 서울아시안게임을 방해하고 종국적으로는 88서울올림픽을 저지하기 위해 북한 공작원이 저지른 것으로 추정했다.
 

 

 

 

 

대한항공 858기 폭파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한 대한항공 858 여객기가 북한 공작원 김현희가 사전에 장치해 둔 폭탄에 의해 공중 폭파되면서 탑승하고 있던 한국인 승객 93명과 외국인 2명, 승무원 20명 등 115명 전원이 숨졌다. 이 테러를 주도했던 김현희는 바레인에서 체포돼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
 

 

 

 

 

북한, DMZ 임무포기 선언
1996년 4월. 북한이 4일 '조선인민군 판문점대표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밝힌 '비무장지대의 유지관리임무 포기' 선언은 '정전협정체제 무력화' 라는 기존조치를 한 단계 더 높인 것으로 분석된다.이 담화는 '남측이 먼저 비무장지대에 탱크. 포. 핵무기등을 반입. 공격발진기지로 삼았다'면서 이에 대응해 비무장지대에 유지.관리와 관련한 임무포기, 북측 인원. 차량에 대한 식별표지 미착용등 두 가지 조치를 취한다고 선언했다.
 

 

 

 

 

북, 중화기 반입
1996년 4월 6일. 북한군이 판문점 JSA(공동경비구역)에 중무장한 병력을 투입, 휴전선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군당국은 북한군이 다른지역에서 도발할 가능성에 대비, 비상경계근무태세에 돌입했으며 지난 해 12월 1일부터 4월 30일까지 계획했던 동계작전태세를 재점검하는 등 경계태세를 강화했다.
 

 

 

 

 

강릉 무장공비 침투
1996년 동해고속도로상에서 택시기사가 바다에 수상한 물체를 보고 신고. 22전대 소속 상어급 잠수함을 타고 온 북한 공작원들로 인해 2개월간에 걸쳐 소탕작전. 민간인 포함 18명 사망. 군은 연인원 150만명이 동원된 정전이후 최대의 군사작전이었다.
 

 

 

 

 

대성동 주민 납치
북한 무장군인 12명이 1997년 10월 17일 군사분계선을 넘어와 대성동 마을 영농지역에서 일하던 주민 2명을 납치, 북한지역에 억류했다. 유엔사와 북한측은 이날 오후 군사정전위 비서장급회의를 열어 송환문제를 논의했으나 월경여부에 대한 의견차이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북한측은 그러나 송환하겠다는 원칙적인 의사를 표명했다.
 

 

 

 

 

JSA 북한군 군사분계선 침범
1997년 7월 17일.북한군 14명이 16일 오전 중동부전선 비무장지대(DMZ)내 군사분계선(MDL)을 침범, 남북한군 전방초소(GP)간에 23분 동안 300여발의 소총과 포사격이 오가는 심각한 교전상황이 발생했다. 이날 교전으로 우리군의 인명피해는 없었으나 국군GP관측구와 지하벙커 입구 일부가 파손됐다.
 

 

 

 

 

동해 무장간첩 침투
1998년 7월12일 발견된 시체에서는 체코제 기관권총과 수중 송수신기, 사각수류탄에 통신문건.해도 등 북한 무장간첩들이 지니는 장비가 대거 발견됐다.군 당국은 특히 침투용 추진기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동해시 인근에 모선 등을 정박시킨 뒤 추진기로 해안에 접근했을 것으로 보고 인근 해상과 해안가 일대에서 사실상의 대간첩작전을 진행중이다.
 

 

 

 

 

북한 반잠수함 침투
98년 12월 17일. 여수 앞바다로 무장간첩 6~8명을 태운 북한 반잠수정이 침투했다. 우리군은 치열한 추격전과 함포사격으로 거제도 남방 100km해상 남해의 바다속으로 격침시켰다.남해안의 여수에 출현했던 잠수정은 백령도쪽에서 서해안을 따라 침투했을 가능성이 높다
 

 

 

 

 

제1차 연평해전
1999년 6월 15일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한국 영해를 침범한 북한 경비정을 한국 해군의 고속정이 선체를 충돌시키는 방법으로 밀어내는 과정에서 일어난 사태였다. 이 교전에서 북한의 어뢰정 1척이 침몰하였고, 420t급 경비정 1척이 대파되었다.한국의 고속정과 초계함 등 2척도 북한 어뢰정이 발사한 27㎜ 함포를 맞아 선체의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사자는 없으며, 장병 7명이 부상을 당했다.
 

 

 

 

 

북한군 아군 초소에 기관총 3발 발사
2001년11월27일 오전 10시42분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장파리 북쪽 7㎞ 비무장지대(DMZ)내 북한군 경계초소(GP)에서 우리 군 초소로 기관총 3발의 총격이 가해졌다고 합동참모본부가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북측의 총격을 받은 직후 아군은 교전규칙에 따라 경고방송에 이어 소총으로 15발 가량의 대응사격을 했고, 이후 북한군의 응전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총격전은 1998년 6월 북한의 같은 초소에서 아군 초소에 사격한 이후 3년5개월 만에 처음이다.
 

 

 

 

 

대청해전 발생
11월10일 대청도 해역에서 발생했다. 북한 경비정이 월선하자 해군은 경고사격을 시작했고 북한 경비정은 85㎜ 함포 사격으로 맞섰다. 해군의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북한군은 1명이 숨졌다. 북한 경비정은 해군 고속정의 40㎜ 함포 500발을 맞고 반파된 채 돌아갔다. 국방부는 2008년부터 연평도 해상에서 벌어진 1·2차 서해교전을 ‘연평해전’으로 대청도 해상에서 벌어진 교전을 ‘대청해전’으로 이름지었다.
 

 

 

 

 

제2차 연평해전
2002년 6월29일. 북한 경비정 2척은 연평도 서쪽 12.6㎞ 해상에서 퇴각을 요구하는 해군 고속정 편대를 향해 85㎜와 35㎜ 함포 사격을 가했다. 해군이 40㎜ 함포와 20㎜ 벌컨포로 대응하는 등 교전은 20여분 동안 이어졌다. 우리 해군 6명이 숨지고 18명이 부상했고 고속정 1척이 침몰했다. 북한군도 13명이 숨지고 25명이 부상했으며 경비정 1척이 대파됐다.
 

 

 

 

 

천안함 침몰
2010년 3월 26일에 백령도 해상에서 대한민국 해군의 초계함인 천안함이 침몰한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출동한 인천해양경찰서 소속 해안경비정에 의해 천안함에 탑승하고 있던 승조원 104명 중 58명이 구조되었으며 나머지 46명은 실종되었다. 이후 실종자 수색과 선체 인양이 진행되면서 실종자 46명 중 40명이 사망자로 확인되었으며 6명이 실종자로 남아 있다.
 

 

 

 

백령도 해상에 해안포 발사
2010년 11월9일 북한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근처 바다로 해안포 130여발을 쏘았다고 밝혔다. 포탄은 북방한계선 이북에 떨어져 우리 쪽 피해는 없었다. 이 관계자는 “북한 해안포 사격은 5~9일 진행된 우리 군의 서해 합동훈련에 대한 대응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은 서해 합동훈련에 대해 여러차례 대응타격을 공언한 바 있다.
 

 

 

 

 

연평도 포격
2010년11월23일 오후 2시34분께 서해 연평도 인근에 북한 해안포 수십발이 발사됐으며 이 중 수발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발사된 것으로 확인됐다.이에 우리 군도 북한 해안포 기지 인근으로 자위권 행사차원에서 K-9 자주포 수십발로 대응사격을 실시했다고 합참은 전했다.북한의 해안포 사격에 대해 군 당국은 서해 5도 지역에 ‘진도개 하나’를 발령했으며 해안포 사격으로 우리 군 2명(병장 서정우, 이병 문광욱)과 민간인2명(김치백·배복철)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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