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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6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독일군에 내쫓겨 '게토'에 강제수용되고 있는 유태인 가족 ]

 

 

 

▶ 2010년   전통가곡.대목장.매사냥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결정

 

▶ 2009년   미셜 위, LPGA 프로데뷔 첫 우승

 

▶ 2008년   캘리포니아 곳곳서 큰 산불..LA 비상사태 선포

 

▶ 2004년   콘돌리자 라이스 흑인여성 최초 미국 국무장관에 선출

 

▶ 2000년   클린턴 미국 대통령, 25년 만에 베트남 방문

 

▶ 1995년   노태우 전대통령 구속

 

▶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 결성

 

▶ 1989년   제4차 남북체육회담, 남북단일팀 명칭 `코리아`로 결정

 

▶ 1988년   삼성전자, 세계2번째로 1MS램 개발

 

▶ 1988년   북한 연형묵 총리, 부총리급을 단장으로 하는 남북정치군사회담 제의

 

▶ 1987년   낙동강하구둑 준공

 

▶ 1984년   동양 최장 대호방조제 준공

 

▶ 1983년   PLO반군, 아라파트 최후거점 점령

 

▶ 1983년   소련 `특무부대` 창설

 

▶ 1983년   소련, 미국기술 훔쳐 순항미사일 개발

 

▶ 1982년   국내 처음 근대2종경기(수상,육상) 개막. 우승 강석인

 

▶ 1982년   아시아경기연맹(AGF), AGF를 해체하고 새로운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창설키로

 

▶ 1981년   연합통신, 제1회 전국신문-방송발행인 및 편집-보도국장회의 개최

 

▶ 1981년   미국-중공 공동경제협의회 개막(북경)

 

▶ 1977년   장성탄광 갱도에 화재, 46명 사상

 

▶ 1976년   세계 희귀조인 황새, 제주 성산포서 발견

 

▶ 1975년   스페인령 사하라를 모로코와 모리타니아가 분할키로 합의

 

▶ 1970년   파키스탄 태풍과 해일로 150만명 사망 

 

▶ 1965년   소련, 금성탐사를 위한 `금성3호` 발사

 

▶ 1962년   콜롬보계획 14차 자문위 한국가입 가결

 

▶ 1962년   프랑스 총선, 드골체제 확립

 

▶ 1960년   미국 영화배우 클라크 게이블 사망

 

▶ 1959년   대구 국제백화점에서 화재 300여 점포 소실

 

▶ 1957년   64개국 공산당-노동당 회의. 모스크바에서 개최

 

▶ 1949년   외자구매청 신설

 

▶ 1945년   44개국의 교육문화회의에서 유네스코 헌장 채택

 

▶ 1945년   유네스코 창립총회

 

▶ 1940년   나치스, 바르샤바에 '게토' 설치

 

▶ 1938년   영국, 이탈리아의 이디오피아 병합 승인

 

▶ 1933년   미-소 외교관계 수립

 

▶ 1919년   일본 낭인들, 항일중국학생들을 폭행(복주사건)

 

▶ 1918년   헝가리 공화제 선언

 

▶ 1908년   동양애국부인회, 부인병원 설립

 

▶ 1908년   보이스카우트 창설

 

▶ 1907년   오클라호마, 미합중국에 편입

 

▶ 1906년   토지-건물전당(典當)집행규칙 발표

 

▶ 1904년   제중원(세브란스병원) 낙성식

 

▶ 1900년   세계최초로 시민이 창설한 필라델피아 관현악단, 제1회 콘서트 개막

 

▶ 1899년   청-프랑스, 광주만 조차조약 조인

 

▶ 1831년   '전쟁론'의 저자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 사망

 

▶ 1643년   상중 혼인 금지

 

▶ 1532년   스페인 프란시스코 피사로, 잉카제국 침략

 

▶ 1308년   동성동본의 결혼금지

 

 

 

 

[ 사진2. 폴란드 바르샤바 유태인 거주지역 게토에 설치 된 담장 ]

 

[ 사진3. 폴란드 우치시 Zgierska거리 게토 육교 부근의 모습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40년 11월16일 폴란드에 거주하는 유대인을

격리하기 위한 `게토'(Ghetto)가 1940년 11월 16일 바르샤바에 설치됐다.

게토는 소수 인종이나 민족 또는 종교집단이 거주하는 도시 내의 한 구역을

일컫는다. 역사적으로 1179년 그리스도 교도와 유대교의 교류를 금지한

 제3회 라테라노공의회에서 발단하여 1280년 모로코에서 회교도들이

유대교도를 강제로 분리이주 시키면서 형성되었다. 바르샤바에 설치된

게토는 히틀러가 유대인을 집단 학살하기 위해 수용소로 보내기 전 강제

이주시킨 유대인 집단촌이다. 원래는 프라하에 설치할 예정이었으나 학살

계획이 임박해오자 급히 바르샤바 시내에 설치했다.

 

 

 

[ 사진4. 폴란드 우치(Lodz)시 게토의 Zgierska 거리의 육교 ]

 

[ 사진5. 바르샤바 게토에 형성 된 시장 모습 ]

 

 

 

둘레에는 3m 높이의 콘크리트 벽이 설치된 4㎢의 공간에 50만 명의

유대인들은 열악한 위생상태 하에서 근근이 살아가야 했다. 식사량도

독일인 평균(2,400㎉)의 10분의 1에도 못 미쳐 결국 1942년 7월까지

기아와 질병 등으로 12만명이 이곳에서 죽어나갔다. 나치에 의해 설치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죽음의 도살장이었다면, 게토는 사실상 죽음으로

가는 대기실이었다. 그곳에는 언제나 비명과 시체만이 난무했다.

 

 

 

[ 사진6. 게토 쓰레기더미 밑의 땅을 파서 먹을 것을 뒤지는 유태인여성과 이이들 ]

 

[ 사진7. 게토 쓰레기더미 밑의 땅을 파서 먹을 것을 뒤지는 유태인여성과 이이들 ]

 

 

 

게토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에게 학살 수용소로 이주하라는 명령이 내려진

것은 1942년 7월 22일이었다. 그해 9월 12일까지 약 30만명의 유대인이

가스실에서 죽음을 맞았다. 그리고 남아있는 대부분에게 사형판결이 내려지자

히틀러는 "바르샤바의 게토를 파괴하라"고 명령했다. 1943년 1월18일 두 번째

강제 이주가 시도되자 최초의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비밀리에 무기를 확보하며

결사항전을 다짐했던 유대인들은 SS대원을 20명이나 살해했지만 그 댓가로

1,000여명의 유대인을 잃어야 했다.

 

 

 

 [ 사진8. 바르샤바 게토의 은신처 벙커에서 독일군에게 사로 잡힌 유태인들 ]

 

[ 사진9. 바르샤바의 게토에 숨어 독일군에 저항하다 붙잡혀 호송되는 유태인 봉기군 ]

 

 

 

1943년 4월 19일,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SS대원들이 다시 들이닥쳤다.

권총, 수류탄, 화염병 등으로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유대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죽음뿐이었다. 그 사이 죽어간 유대인은 1만 3,000명을 헤아렸다.

5월 16일 현장 지휘관인 슈트로프는 상부에 이렇게 보고했다. "체포되거나

학살된 유대인은 5만 6,065명. 바르샤바 게토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저녁 8시 15분에 모두 상황은 종료됐다."

 

 

 

 [ 사진10. 독일군의 포격에 폭파된 유태인 봉기군의 벙커 ]

 

[사진11. 독일군에게 사살 당한 바르샤바 유태인 봉기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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