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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5일] 인서울쌤과 함께 떠나는 오늘의 역사

 

 

 

 

 

[ 사진1. 뮌헨올림픽 (왼쪽) 엠블럼 로고 , (가운데) 뮌헨올림픽 포스터 , (오른쪽) 뮌헨올림픽 메달 ] 

 

 

 

 

▶ 2004년   김연아, 국내 피겨 스케이팅사상 100년만에 국제대회 첫 우승

 

▶ 2002년   미국-영국 군용기 100여대, 4년 만에 최대규모로 이라크 공습

 

▶ 2002년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암살 미수

 

▶ 1999년   방송-통신위성 '무궁화3호' 기아나 쿠루기지에서 성공적으로 발사

 

▶ 1998년   서울대, 법학계열을 제외한 의학계열만으로

 

                 `2+4전문대학원`을 설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학제개혁안을 확정

 

▶ 1997년   지휘자 게오르그 솔티 사망

 

▶ 1997년   테레사 수녀 사망

 

▶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 1994년   태권도, 2000년 올림픽 정식경기 채택

 

▶ 1992년   송탄 서쪽 25km 해안지역서 강도 2.7의 지진  

 

▶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서울서 개최

 

▶ 1989년   조훈현, 제1회 응창기배 세계프로바둑대회 우승

 

▶ 1989년   동화은행 첫 개점

 

▶ 1987년   방송심의위원회, 방송금지가요 500곡 해제

 

▶ 1982년   이스라엘정부,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8개 정착촌 건설 승인

 

▶ 1982년   중공당(中共黨), 주석제를 총서기제로 개편

 

▶ 1980년   문교부, 대학교육개혁 시안 발표 - 대학졸업정원제 발표

 

▶ 1980년   국방부, 북한 `대남비방` 방송 재개 발표

 

▶ 1978년   이집트와 이스라엘간의 캠프데이비드회담 시작

 

▶ 1978년   합동통신 한창섭 주(駐)뉴욕특파원 한국기자론 첫 소련입국,

 

                 세계보건기구(WHO)회의 취재

 

▶ 1977년   보이저1호 발사

 

▶ 1977년   국군정신전력학교 신설

 

▶ 1973년   평양지하철 개통

 

▶ 1972년   검은9월단, 뮌헨올림픽 인질극

 

▶ 1971년   경남 진해에서 소풍객을 실은 버스가 추락

 

▶ 1967년   경원선 철도 폭파사건  

 

▶ 1966년   백마先陣, 월남 상륙

 

▶ 1963년   한국-중앙아프리카공화국 국교 수립

 

▶ 1956년   서울특별시의회 첫 개회 

 

▶ 1955년   관(官) 요금 인하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 공포

 

▶ 1955년   한국사진회 발족

 

▶ 1954년   자유당, 초대대통령 재선(再選) 제한 철폐 등 개헌안 제의

 

▶ 1948년   국방경비대와 해양경비대를 육-해군으로 개편

 

▶ 1945년   경전(京電), 일본인 간부 퇴진 요구하며 총파업

 

▶ 1944년   베네룩스 관세동맹조약 조인

 

▶ 1944년   안네 프랑크 가족 강제수용소로 이송

 

▶ 1936년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 사진의 일장기를 지우고 게재한

             

                 `조선중앙일보` 자진휴간

 

▶ 1920년   조선일보 제2차 정간(~12.24)

 

▶ 1913년   월간소년잡지 `아이들보이` 창간

 

▶ 1912년   미국의 작곡가 존케이지 출생

 

▶ 1905년   러일강화조약(포츠머스조약) 조인

 

▶ 1898년   황성신문 창간

 

▶ 1888년   인도의 대통령(1962-67) 라다크리슈난 출생

 

▶ 1774년   19세기 초 독일의 낭만주의를 개척한 화가 프리드리히 출생

 

▶ 1638년   루이14세 출생

 

▶ 1187년   카페 왕조 출신 프랑스의 왕 루이8세 출생

 

 

 

 

[ 사진2. 뮌헨올림픽 선수촌을 공격한 검은9월단 멤버 ]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1972년 9월5일 새벽. ‘검은 9월단’을 자칭하는 8명의

아랍 무장 게릴라들이 뮌헨올림픽 이스라엘 선수촌에 난입,

코치 2명을 사살하고 선수 9명을 인질로 삼았습니다.

화해와 축제의 장이어야 할 올림픽이 졸지에 공포의 무대로 변했죠

 

 

지금부터 뮌헨올림픽 테러사건 발생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사진3. 뮌헨올림픽에서 희생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 ]

 

 

 

- 뮌헨올림픽 테러사건 발생 -

 

제 20회 뮌헨 올림픽이 종반을 향하던 1972년 9월 5일 새벽,

팔레스타인‘검은 9월단’ 소속의 무장단원 8명이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합니다.

 

 

 

[ 사진4.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AK-47 자동소총과 수류탄 등으로 무장한 이들은 저항하는

 이스라엘 선수 2명을 현장에서 사살하고 9명을 인질로 잡았죠.

그리고 이스라엘 정부에 의해 구금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정치범

236 명과 일본과 서독 출신 적군파 요원들을 4시간 내로 석방하고

안전한 탈출로를 보장하라는 요구를 내걸고 경찰과 대치합니다.

 

 

 

[ 사진5.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만일 당일 9시까지 이 같은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30분 간격으로 인질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합니다. 서독 정부는

검은 9월단의 요구조건을 놓고 이스라엘 정부와도 협의에 들어갔지만,

 이스라엘의 반응은 단호했습니다. ‘절대로 테러리스트들의 요구는

들어줄 수 없다’는 것이었죠. 다만 인질 전원을 석방한다면 테러단들이

 제 3국으로 가는 것은 용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 사진6.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 뮌헨에서 희생된 11명의 이스라엘 선수단 -

 

이스라엘의 단호한 대응으로 이튿날인 6일까지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자 무장단원들은 아랍국가로의 탈출을

모색합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는 이집트 정부와 협의, 테러리스트들이 항공기를 이용해

이집트로 갈 수 있도록 약속을 받아내죠. 무장대원들은 자신들이

이집트로 타고 갈 여객기와 비행장까지 이동할 헬기를 요구합니다.

 

 

 

 [ 사진7.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서독 경찰(나치 통치의 악몽에서 자유롭지 못한 서독은

국내 사건에 군이 개입하는 것을 엄격하게 막고 있었고,

국가차원의 대테러 대책도 전무한 실정이었습니다)은

공군기지에 여객기를 준비해 놓고 헬기를 선수촌으로 보냅니다.

그리고 무장대원들이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헬기에 탑승할 때

제압하거나 그것이 실패했을 때 여객기 안에 승무원을 가장한

경찰을 잠복시키고 비행기 주변의 건물과 엄폐장소에 저격수를

배치해 전격 진압한 다음 인질을 구출한다는 작전계획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 사진8.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첫 번째 계획은 테러리스트들이 낌새를 알아채고 숙소에서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헬기 쪽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죠. 진압작전은 2단계로 접어듭니다. 헬기가

공군기지에 도착하자 무장대원 2명이 먼저 내려 그들이 타고 갈

여객기에 접근하다가 조종실에 승무원이 없음을 확인, 또 다른 진압작전이

 기다리고 있음을 감지하고 급히 헬기로 되돌아오는 순간 저격수들의

사격이 시작됩니다. 비극의 시작이었죠.

 

 

 

[ 사진9.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은 즉각 반격에 나섰고 인질들에게도

총격을 가합니다. 상황이 불리해지자 무장대원들은 헬기 안에 있는

인질들에게 수류탄을 투척하죠. 이 진압작전은 무장대원 5명이 사살되고

 3명이 사로잡히는 것으로 작전은 종료됐지만 인질로 잡혀 있던 이스라엘

 선수 9명 전원과 진압경찰 2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 사진10.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에 의해 전소 된 헬리콥터 ]

 

 

 

- 참극의 현장, 전소된 헬리콥터가 사건의 비극성을 대변합니다 -

 

평화의 제전이라는 올림픽의 기치는 땅에 떨어지고 이스라엘 선수단은

 희생된 동료들의 시신을 싣고 귀국해 버립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즉각

보복에 착수했죠. 이스라엘의 대응 수단 역시 테러였습니다.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여 전세계를 무대로 한 무차별 보복전이었습니다.

 

 

 

[ 사진11. 뮌헨올림픽 검은9월단 테러리스트 생포 ]

 

 

 

시리아와 레바논의 팔레스타인 캠프를 폭격하고 특수부대를 동원해

테러에 관련된 ‘검은 9월단’ 관련자들은 끝까지 추적해 세계 곳곳에서

이들을 살해했죠. 이런 암살은 20여년에 걸쳐 그야말로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철저하게 실행되었습니다. 죽은 사람들은 뮌헨 테러에 관련이 있건 없건,

무엇을 하건 조금이라도 의심이 있으면 보복과 예방 암살 표적이 되었고, 적어도

한 번 이상은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실수로 전혀 엉뚱한 사람이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뮌헨 올림픽 테러사건은 전 세계에 국가적 차원에서 확실한 테러

대비책과 대응전담 조직을 양성할 필요성을 절감하게 했고, 테러리즘을

주요한 국제적 위협으로 인식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사진12. 뮌헨올림픽 테러리스트들에게 희생당한 선수단 유가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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